5월 소비자물가 전년비 0.7%↑… 메르스 사태 이후 최장 기록
전문가들 “가계가 내수 못 받쳐줘” 정부는 “유가 하락 영향 커”
한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공포’가 가시지 않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개월째 0%대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올해 1분기 국민총소득(GNI)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줄면서 내수 부진과 저물가 간 악순환 고리가 이미 형성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0%대 물가에 소득도 대폭 감소
4일 통계청의 ‘5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0.7% 상승에 그치며 지난 1월 이후 5개월 연속 0%대에 머물렀다. 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가 컸던 2015년 2~11월(10개월) 이래 4년여 만에 가장 긴 0%대 물가 행진이다. 지난달 저물가는 특히 서비스 물가 상승률(0.8%)이 1999년 12월(0.1%)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채소류(-9.9%)와 석유류(-1.7%) 물가가 하락한 것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1분기 국민소득(잠정)’에선 소득 지표가 일제히 악화됐다. 1분기 명목 GNI는 전분기 대비 1.4% 감소했는데, 이는 2008년 4분기(-1.4%) 이래 10여 년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GNI에 해외 경상이전(생산활동과 무관한 소득 이동) 거래를 합산한 국민총처분가능소득도 1.4% 줄어 지난해 4분기(-0.1%)에 이어 2개 분기 연속 감소했다.
소득 감소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며 1분기 소비지출도 0.1% 감소했다. 가계가 포함된 민간 소비지출은 감소폭이 0.5%로 더 컸다. 소득은 대폭 줄었지만 소비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보니 저축(소득-소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1분기 총저축률(저축을 총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값)은 전기보다 0.9%포인트 떨어진 34.5%를 기록, 2012년 4분기(34.1%) 이래 가장 낮았다.
◇”이미 디플레 진입했다” 진단도
낮은 물가와 국민소득 및 소비 감소가 동시 진행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통상적인 디플레 판정 기준은 ‘2개 분기 연속 물가 하락’이어서 아직 디플레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의 최근 상황에 비춰볼 때 보다 심각하게 디플레 진입 가능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일부 전문가들은 “저물가가 수출, 투자, 고용의 총체적 부진과 맞물려 있는 만큼 우리 경제가 이미 디플레에 진입했다고 봐야 한다”(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진단도 내놓고 있다.
디플레 국면에선 저물가가 ‘앞으로 상품ㆍ서비스 가격이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초래하고, 이로 인한 소비 감소가 물가를 더욱 끌어내리며 경기 전반을 침체시키는 연쇄 작용이 일어난다. 여기에 소득 감소에 따른 구매력 약화까지 가세할 경우 악순환 고리가 강화될 수 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전반적인 고용 상황이 좋지 않고 신규 취업자도 대부분 저임금 공공일자리이다 보니 가계가 내수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당국은 디플레를 염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김윤성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최근 저물가는 복지 정책에 따른 서비스 물가 억제와 석유류 가격 하락의 영향이 크다”며 “이를 제외하면 디플레 우려는 과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석유류와 농산물 등 공급 요인에 따른 가격 변동성이 높은 물품을 제외해 수요 측면의 물가 압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통용되는 근원물가 상승률 또한 지난 3월 이래 3개월 연속 0%대에 머물고 있다. 특히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0.6%)은 1999년 12월(0.1%) 이후 가장 낮았다. 지금의 저물가가 내수 부진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는 의미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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