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대국 경쟁과 구별되는 미중 대결
미국, 패권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 줄고
반복되던 미국 쇠퇴론에도 새로운 양상
2일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에 있는 포드 극장 연례 갈라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포토아이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구호다. 폭스뉴스는 “미 정치사상 가장 많은 반향을 일으킨 슬로건”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 구호엔 역설적인 면이 있다. 공감하는 이들은 현재 나라 상태가 위대하지 않다고 믿고 있고, 그 속 자신의 생활에 불만이 있다는 뜻을 품고 있다. 실제 한 조사는 트럼프가 당선된 해 미국인 과반수가 미국이 쇠퇴 중이라 여긴다며 그런 분위기가 “불안, 향수, 불신” 세 단어로 요약된다고 했다.

이 구호는 새로운 것도 아니다. 1980년 대선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슬로건이었다. 카터 정권 하의 경기 침체와 이란 인질구출 실패 등으로 미국 장래에 대한 비관론이 팽배해진 게 배경이 됐다. 레이건 캠프는 “미국은 다시 아침입니다(It’s Morning again in America)”란 광고로 선거판을 지배했다.

나라의 번영과 패권이 끝나고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는 주장은 미국에서 백 년 가까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런 논리나 이론들을 통틀어 ‘미국쇠퇴론’(American Declinism)이라 부른다. ‘이즘(-ism)’을 붙일 만큼 미국에선 이런 주장들이 뿌리가 깊고, 주기적으로 나온다. 쇠퇴론은 미국 정치특징 중 하나고, 미국 예외주의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과거를 더 좋게 생각하는 심리에다 갑작스럽게 초강국으로 성장한 데 대한 미국인 스스로의 놀라움 등 인지적 요소가 있다고 한다. 일종의 집단적 편견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중국 위협론도 나타났다 사라지는 주장이 될까? 미국 대외정책에는 논쟁의 패턴이 있다. 전통적으로 고립주의와 국제주의 논쟁이 있고, 민주국가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이상주의와 세력 균형을 중시하는 현실주의 논쟁이 있다. 한편으론 미국 쇠퇴론과 이를 극복하자는 주장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2011년 당시 클린턴 국무장관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노선(Pivot to Asia)을 발표하는 기고문을 미국쇠퇴론으로 시작했다. “익히 듣던 얘기입니다. 베트남전이 끝난 뒤, 평론가들이 미국이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을 퍼뜨렸습니다. 수십 년마다 반복하는 얘기입니다.”

논쟁의 되풀이는 역설적으로 지금까지는 미국의 쇠퇴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걸 말해준다. 그래서 논쟁의 끝은 미국인에겐 미담이 됐다. 소련 우주선 발상 이후의 스푸트니크 쇼크, 베트남전 패배 등 초강국 위상의 위협이 생길 때마다 미국은 막대한 자원을 동원했으면서도 무형자산인 미국적 가치와 규범을 통해 이겼다는 점을 강조하곤 했다. 그것은 패권국가의 특징이다. 자기가 주도하는 세계체제에 다른 나라들의 자발적 동참을 유도하는 데 우선순위를 둔다.

요즘 미국에서 드물게 여야 이견이 없는 게 대 중국 강경론이다. 언론에는 어렵고 힘들더라도 견디겠다는 소상공인의 인터뷰가 잇따라 보도됐다. 트럼프에 비판적인 주류언론들도 강경하다. 뉴욕타임스 토머스 프리드먼은 “중국에는 트럼프가 제격”이란 칼럼으로 지지를 표했다. “중국을 글로벌경제 시스템에 받아들여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사회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그 희망은 산산조각 났다"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성명과 마치 상의한 듯 같은 논리다.

하지만 민·관·언이 하나가 된 듯한 강경론 속에서 과거 같은 미국적 가치나 규범에 대한 얘기는 거의 찾을 수 없다. 프리드먼은 월가의 기업들이 민주주의를 가져올 것이라는 극단적 세계화론을 펼치곤 했다. 1980년대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계기로 무역전쟁에서 금융전쟁으로 경쟁의 룰을 바꿨다. 그런데 지금 중국과의 대결에선 미국이 적자폭 얘기를 하고, 중국이 세계체제 얘기를 한다. 미국 플레처스쿨의 대니얼 드레즈너 교수는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에서 과거 미국 위상에 대한 여러 우려들이 억측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패권에 대한 관심과 자신감이 훨씬 줄어든 미국이 새로운 세계가 가까이 왔음을 알려준다.

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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