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 미군은 총 178만명에 달한다. 그 중 가장 오래 복무한 장병은 고(故) 존 피츠패트릭 대위(1953년 현재)다. 일반 장병이 40점 복무 포인트를 쌓은 뒤 6개월~1년이면 귀국했는데, 2년6개월간 129점을 쌓고도 귀국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 국방부의 특별 귀국명령까지 받았다.

이 사연은 내가 워싱턴 특파원이던 2017년 4월 91세로 영면한 그의 기사를 쓰면서 알게 됐다. 유가족에게 해당 기사가 실린 한국일보를 전달하면서 한국 방식대로 조의금 형식으로 50달러 개인수표를 신문에 끼워 넣었다. 최근 에콰도르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된 고인의 장남 마이클 피츠패트릭은 그러나 수표를 현금화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유족은 화환이나 조의금을 원치 않았고 고인이 생전 후원한 재단에 기부하길 원했다. 미국과 한국의 장례문화가 다른 걸 그 때 알게 됐다.

존 피츠패트릭 대위의 한국전쟁 당시 모습(위 사진 왼쪽)과 노년의 모습. 아래 사진은 복무 포인트를 3배 이상 초과하고도 귀국하지 않고 있는 피츠패트릭 대위에게 미 국방부가 특별 귀국명령을 내렸다는 1953년 당시 뉴욕타임스 기사. 유족 제공.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은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이 다르다. 터키에서 화장은 시신 오욕 행위로 금지된다. 반면 인도에서는 대부분 화장된다. 스위스 사람들은 부모, 형제를 매장한 후 25년이 되면 유골을 파헤쳐 이를 퇴비로 이용한다.

우리 조상들의 장례도 지금과 달랐다. 논어 양화편(陽貨篇)에서 공자가 제자 재아(宰我)를 꾸짖으며 설파했듯이 부모가 숨지면 3년상을 지냈다. 공자는 “자식은 태어나 3년은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무릇 부모를 위해 3년상을 치르는 것이 천하에 통하는 상례”라고 주장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는 임금도 3년상 때문에 힘들었다. 3년상 중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기도 먹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 태종이 평소 육식을 좋아하던 아들 세종을 위해 죽기 직전 신하들에게 “주상(세종)더러 내 상중에는 고기 드셔도 된다고 해라”고 했다는 일화가 나올 정도다. 조선이 성리학을 맹종하게 된 뒤에는 3년상 때문에 임금이 건강을 해쳐 죽는 일도 있었다. 문종과 인종이다. 문종은 아버지 세종과 어머니 소헌왕후 3년상을 연거푸 6년간 치르면서 몸이 쇠약해져 종기를 앓다가 사망했다. 효심이 지극했던 인종은 아버지(중종) 장례를 치르면서 극단적으로 음식 먹기를 거부하다가 거식증으로 숨졌다. 신하들이 ‘수라를 드시라’고 통사정을 했지만, 즉위한 지 9개월 만에 사망했다.

되풀이되어서는 안되지만 헝가리 ‘허블레아니호’ 유람선 참사는 선박사고 대응이 죽음을 애도할 때처럼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는 걸 보여줬다. 우리는 대통령 지시로 외교장관이 현장 책임자가 돼 수십 여명 구조대원을 데리고 날아갔지만, 헝가리 당국 대응은 우리 기준으로는 답답하기 그지 없다. 시신 유실 방지에 필수적인 차단막이 제때 설치되지 않아 사고 지점에서 100㎞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고, 수심이 깊고 물살이 빠르다는 이유로 우리 구조팀의 침몰 선박 내부진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대신 선내에 있을 시신의 유실 위험을 감수한 채 크레인으로 침몰 선박을 인양키로 결정했다. 5년전 세월호 사고 때 우리 당국의 대처와 이를 더욱 독려한 국민 여론과는 동떨어진 헝가리 당국의 모습이다.

하지만 헝가리의 얄미운 대응은 우리를 돌아보게도 한다. 선박사고 특성상 불가항력적 상황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국정 최고책임자 의지가 ‘보여주기 과잉 대응’ 비판을 낳을 정도로 현장에서 맹목적으로 집행돼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려준다. 장관 급파에 따른 외교력 저하, 대규모 구조대 파견에 따른 국내 재난대응 능력 약화라는 기회비용은 이번이면 족하다. 동시에 세월호와 비교하며, 불가항력적 상황 때문에 고민에 빠진 당국을 비웃는 일도 없어야 한다. 그것만이 이번 참사를 기리고, 세월호 상처도 발전적으로 치유하는 길이다.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다시 한번 기원한다.

조철환ㆍ국제부장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