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양심의 자유 침해” 1심 뒤집고 원고 승소판결

대학 동기에게 성희롱 발언을 한 가해자에게 대학 측이 “공개 사과문을 게재하라”고 내린 명령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5부(부장 이동근)는 서울의 한 대학교 학생 A씨가 소속 대학을 상대로 낸 징계 무효확인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14년 대학에 입학한 A씨는 같은 과 여자 동기 1명, 남자 동기 27명으로 이뤄진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여성의 특정 신체 부위와 여학생 이름을 합성한 표현을 쓰거나, 성적 농담을 하면서 여학생들의 외모를 비하하는 말을 하는 등 3년간 성희롱 발언을 반복했다. 2017년 대학으로부터 200시간 봉사와 함께 공개사과문을 게재하라는 징계를 받은 A씨는 “상벌규정에 공개사과와 관련한 근거가 없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 무효”라면서 소송을 냈다. 대학 측은 “교육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적법하다”고 맞섰다.
1심은 대학 측의 징계가 적법하다고 판단해서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성적 굴욕감 및 혐오감 등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성희롱적 발언을 3년 동안 반복했다”면서 “이로 인해 여학생이 상당한 성적 수치심과 굴욕감, 무기력을 느꼈고, 정신적 충격으로 우울증을 얻고 자살충동까지 느끼는 등 피해가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항소심은 “공개사과 명령 부분은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나 위법하다”면서 A씨의 청구를 받아들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고등교육법이나 대학 상벌규정 등을 보면 공개사과문을 게재해야 한다는 근거 조항이 없다”면서 “설사 징계규정이 있다고 해석하더라도 이는 비례의 원칙을 무시하고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해 무효”라고 봤다. “공개사과 명령은 비행을 저질렀다고 믿지 않는 A씨에게 비행을 자인할 것을 강요한다”면서 “이는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 결과가 될 수 있고, 공개사과문이 민ㆍ형사소송에서 불리하게 사용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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