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로 호소…산업안전보건법 개선 요청

2016년 세상을 떠난 고 이한빛 CJ ENM PD의 아버지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 편지를 보내 방송 근로자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하위 법령 개선을 요청했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로 참여하던 이 PD는 방송계의 과도한 업무 강도와 열악한 제작 환경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 2016년 세상을 등졌다.
이 PD의 아버지 이용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3일 시민사회단체 ‘생명안전 시민넷’ 인터넷 홈페이지에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했다. 이 이사장은 “저희 아들 이한빛 PD는 정규직 PD였지만, 한 편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 스태프들의 노동인권 문제를 고발하며 2016년 죽음으로 항거한 27살 아름다운 청년이었다”고 전했다.
이 이사장은 “방송제작 현장의 카메라 뒤에 노동자는 아직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허울뿐인 ‘개인사업자’라는 미명 아래 방송 노동자들은 산안법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의 사각지대’에 놓여 고통과 죽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최소한의 노동자로서 권리인 4대 보험마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노동자이지만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권리도 행사할 수 없는 ‘노동자 아닌 노동자’인 셈”이라고 했다.
이 이사장은 “산안법 시행령을 보고 크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며 “원청 기업에 책임을 묻는 조항이 빠지고, 방송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영역이 법의 적용에서 제외됐다. 구체적인 제재나 규제 방안이 실종돼 산안법 개정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는 유명무실한 법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대로는 방송제작 현장의 ‘죽음의 외주화’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방송근로자의 표준근로계약서 작성과 4대 보험 가입, 모든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 등을 촉구했다.
이 이사장은 최근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의미는 단순히 작품성에 그치지 않는다”며 “근로기준법에 의한 최장 노동시간인 52시간을 준수하고 모든 스태프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여 노동인권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음을 드러낸, 감독과 현장에서 땀 흘린 모든 스태프가 함께 만든 성과”라고 전했다. 이어 "방송 노동자는 물론 이 땅의 모든 노동자가 '기생충'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노동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노동자 개개인이 자기 노동의 가치에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 노동존중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며 “대통령님께서 정부와 관련 부처가 방송노동자도 모든 노동자와 같이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법령으로 제정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간곡하게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편지가 공개되자 한 네티즌(Bu***)은 “조연출로 일했던 사람으로 20시간 근무하고 두 세시간 취침이 와 닿네요. 그건 삶이 아니었습니다”라고 공감했다. 또 다른 네티즌(박**)은 “부디 아드님의 죽음이 헛된 빛이 아니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응원할게요”라고 전했다.
생명안전 시민넷은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실을 통해 문 대통령에게 이 이사장의 편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