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마지막은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투수 류현진 선수가 시즌 8승째를 올리며 장식하더니 6월의 시작은 유럽축구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맹활약을 펼친 영국 토트넘의 손흥민 선수가 열어젖혔다. 서로 다른 두 종목에서 세계 톱클래스의 한국 선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이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위안이고 기쁨이다.
손흥민이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뛸 무렵 영국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는 한국의 아이돌 그룹 BTS가 역사적인 공연을 시작했다. ‘21세기 비틀즈’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BTS는 그 별명에 걸맞게 미국 빌보드 차트에 연달아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그 며칠 전에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사 100년의 기념비적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BTS와 봉준호는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로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무척 크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에만 머물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전혀 이해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한다. 반지하 생활과 ‘대왕 카스테라’의 비극은 한국인이 아니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말 노래를 그대로 따라 부르는 건 아마 더 어려울 것이다. 그 어려움을 넘어서 세계인의 공감에 이른 비결은 지금의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인간 보편정서를 포착했기 때문이다. 커지는 빈부격차와 계층 간 갈등의 골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속에서 무너지고 있는 인간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인류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삶이 힘든 청춘들에게는 ‘꼰대’들의 훈계나 잔소리보다 공감과 위로와 격려가 더 필요하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 모순에 좌절하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는 관점에서 극복하려는 노력 자체가 우리를 포함한 인류 전체의 큰 자산임을 깨닫게 한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손봉류B’를 훨씬 뛰어넘는 ‘슈퍼 코리안’이 이미 있었다. 한겨울 북풍의 한파를 뚫고 촛불 하나로 광장을 지킨 우리 국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가장 평화롭고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부덕한 정권을 내몰고 성공적으로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정치 교과서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 극동의 민주주의 후발국에서,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에서 보란 듯이 기적처럼 일어났다. 이름 없는 평범한 국민 한 명 한 명이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의 깨어 있는 시민이었던 셈이다.
봉준호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와 비슷한 낭보가 과학 분야에서는 언제쯤 들려올까 상상해 보았다. 노벨상을 받지는 않더라도 인간 지성의 최전선에서 그 경계를 넘어 첫발을 내디디는 최초의 여정을 우리가 시작했다는 그런 소식 말이다. 그동안 한국의 과학 또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한 것도 사실이다. 최근 블랙홀의 그림자를 사상 최초로 관측한 작업에서도 한국 연구진이 의미 있게 기여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은 과학의 변방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척 송구한 상황이다.
다만 지극히 한국적인 분위기 속에서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다. 무한경쟁의 강도가 세계 톱클래스인 사회이다 보니 이제는 어지간한 요구조건이 손흥민이나 봉준호 급으로 높아지는 게 아닐까 우려스럽다. 한때 우리가 올림픽 금메달에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었듯이 이제는 어느 분야든 세계 톱클래스가 아니면 눈길조차 주지 않거나 “류현진도 하는데, BTS도 하는데 너는 왜 못해?”라는 강압이 난무하는 역효과만큼은 없었으면 좋겠다. 천재 한 명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헛된 신화가 계속 작동하는 이상 무한경쟁과 양극화와 ‘기생충의 비극’을 막을 길은 없다. 지금은 혼자 잘하던 시대를 이미 넘어섰다. 다 같이 잘하는 통합과 협력의 리더십을 기르지 않으면 초국적인 콜라보로 세상을 움직이는 21세기의 트렌드를 따라갈 수 없다. 지옥 같은 무한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무엇보다 이름 없는 평범한 한국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아를 실현하고 행복한 일상을 이어가는 세상이 더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 제2의 봉준호나 BTS는 이런 세상에서 나올 가능성이 더 많다. 이들의 메시지가 최소한으로라도 작동하는 사회일 테니 말이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차적인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불행히도 여의도의 수준이 세계 바닥권이라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손봉류B’가 훨훨 날았던 지난 5월 내내 국회는 개점휴업이었다. 정치가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의 가장 큰 걱정거리로 전락했으니 참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빨갱이 냄새’가 난다며 여태 선량한 국민들을 괴롭히던 독재의 후예가 ‘독재의 냄새’가 난다는 말에 마음 상해 칼을 품고 가출한 영화 같은 상황이랄까, 여야 모두 한 자리에 모여 ‘기생충’ 단체관람이라도 하길 바란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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