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커뮤니케이터 전성시대
대중과 전문 과학자 사이 소통 돕는 사람들
[저작권 한국일보]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장동선 박사가 5월 25일 오후 부산 북구 금곡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뇌와 뇌를 연결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지난달 25일 오후 2시 부산 금곡동 금곡도서관. 총 장서 3,900여권 남짓한 작은 지역 도서관에 큰 장이 섰다.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의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한시라도 빨리 강연장에 입장하고픈 사람들과 장내를 정돈해야 하는 주최측 사이에서 얕은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했다. 작은 강연이니 80석을 준비했는데, 신청 개시와 함께 마감됐다. 현장에서 찾아 든 사람 때문에 뒤쪽 벽까지 임시 의자 20여개를 더 깔아뒀다. 그것도 모자라 사람들이 문 앞이나 근처에 서서 혹은 앉아서 듣기도 했다. 도서관 관계자는 “이 곳은 비교적 교육 환경이 열악한 곳이라 과학 강연에 이렇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보일 지 몰랐다”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어렵다는 과학 강연이니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겠거니 했지만 대학생 이상 성인 청중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 게다가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시작 40여분 전부터 강연장을 찾은 권택성(58)씨는 “최근 뇌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며 “나이가 들면서 치매 문제에 관심이 많이 생겨 관련된 책을 자주 찾아보는 편인데, 뇌 과학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 강연에 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5월 25일 오후 부산 북구 금곡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의 강연이 열려 참여한 시민들이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이어 장 박사가 훌쩍 강연대 위로 날아올랐다. 장 박사의 강연은 질문으로 시작됐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알까요? 또,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을까요? 마지막으로, 우리의 지능은 어떻게 진화했을까요?”

이날 강연 주제는 ‘뇌와 뇌를 연결하는 법’. 알쏭달쏭한 이 주제를 두고 장 박사는 한 편의 연극 같은 강연을 이어나갔다. 그는 “제가 목소리가 엄청 크다”며 마이크를 치워버리고는 육성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뇌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팔을 높이 들고 좌우로 흔들도록 하는가 하면, 자신이 추는 춤에 맞춰 청중들이 박수를 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궁금해할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대답을 청중과 함께 찾아나갔다. 강의 도중, 장 박사가 사진 하나를 화면에 띄웠다.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굳은 표정을 한 여성 1명과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인 남성의 모습이 들어있었다. “이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도 우리는 얼굴 표정, 포즈만, 사진의 구도만 보고도 누가 더 센 사람인지 알 수 있죠.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신호들이지만 뇌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한 상황이라는걸 알아채기 때문이에요.” 관련된 연구결과와 이론도 차분하게 제시하며 설명해나갔다. 뇌과학은 그렇게 사람들의 뇌리에 스며들었다.

5월 25일 부산 북구 금곡동 금곡도서관에서 열린 '10월의 하늘' 10주년 기념 강연에서 뇌 과학자 장동선 박사가 강의하고 있다. 청중들이 장동선 박사의 지휘에 맞춰 '거울동작'을 하고 있다. 부산 북구청 제공

“뇌는, 사람에 대한 판단을 5분 안에 해버린다고 해요. 일단 즉각적으로 판단을 해버리고 나머지 이유는 끼워 맞춘다고 하죠. 예를 들어 이런 실험 있어요. 실험에 참가한 사람에게 2명의 사진을 보여줘요. 얼굴 형태는 비슷하지만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A씨, 갈색머리에 초록눈을 가진 B씨. 첫 피험자가 A를 고른 다음에 재빨리 사진을 덮은 뒤, 갑자기 B를 보여주면서 ‘왜 이 사람을 골랐나요?’라고 물었을 때 5명 중 4명은 사진을 바꿔치기 한 줄 모르고 이유를 만들어서 댄다는 거예요.”

◇장동선 박사의 뇌과학 쇼

사람들은 열중하고 있었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틈틈이 메모하는 이들이 많았다. 강연은 예정 시간인 40분을 2배나 초과해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지만 중간에 자리를 뜨는 이 하나 없었다. 질문이나 소감을 적어내라고 나눠준 엽서 크기의 종이에는 깨알 같은 글씨의 메모가 가득했다.

“우리 뇌를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래요. 바로 여러분들이죠. 제가 제 얘기를 너무 많이 했죠?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뇌는 도파민을 ‘뿜뿜’ 한다고 하네요. 자기 이야기 시작하면 끝이 없이 하는 이유예요. (하하하) 오늘, 저에게 기쁨 호르몬을 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강의 후 30여분간의 질의 응답, 그리고 사인 공세에다 포토타임까지. 장 박사의 ‘과학 쇼’는 2시간 반 만에 마무리 됐다.

[저작권 한국일보] 5월 25일 오후 부산 북구 금곡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의 강연이 열려 참여한 시민들이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지금은 ‘과학 커뮤니케이터’ 전성시대

장 박사 같은 이들을 부르는 단어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한다. 하지만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라고 하면 다들 ‘아 그 사람!’이라 무릎을 친다. 도킨스는 그 자신이 과학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진화론에 대한 대중적 저서를 많이 써내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가장 친숙한 저술가이기도 하다. 도킨스처럼 대중과 전문과학자들 사이의 소통을 돕는 이들을 ‘과학 커뮤니케이터’라 부른다. 과학적 사고방식을 중시하는 교양 독자층이 두터운 서구에서는 널리 알려진 직업이지만 문사철(文史哲)이나 인문학을 강조하는 우리에겐 아직은 생소하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 유명 클럽에서 펼쳐진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유튜브 캡처/2019-06-03(한국일보)

하지만 이젠 조금씩 달라지는 양상이다. 초중고생에게 꿈을 심어준다는 의미에서 국립과천과학관 같은 곳에나 가야지 볼 수 있었던 과학 강연과 실험들이 대중들 속으로 스며 들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광우병 논란, 황우석 파문에 이어 알파고가 안겨준 인공지능(AI) 충격, 우리를 괴롭히는 미세먼지를 둘러싼 논란, 황사 문제, 차세대 먹거리라는 수소 전지 기술 등 우리를 둘러싼 것들 중에 어느 하나 과학이 아닌 게 없다. 여기에다 양자역학을 내세운 김상욱 경희대 교수, 공룡 이야기를 앞세운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등이 TV에 출연하며 과학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 때문에 장 박사 같은 인기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은 연일 전국 강연을 진행한다. 강연만 있는 게 아니다. 유튜브ㆍ댄스 클럽ㆍ디너쇼ㆍ버스킹 같은 형태의 과학 쇼까지 등장하고 있다. 요즘 장래희망을 묻는 질문에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답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제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강남 클럽에서 열린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SNL)’

가장 충격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 현장은 지난해 12월 22일 서울 논현동 유명 클럽에서는 열린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SNL)’였다. 제목에서 짐작하듯 미국 인기 예능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를 본 딴 행사다. 이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주관했다. 얼마나 많은 우려와 걱정이 쏟아졌을지, 안 봐도 뻔하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 유명 클럽에서 펼쳐진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 유튜브 캡처

그런데 이 행사는 대성공을 거뒀다. 클럽 최대 수용 인원인 600명 분 티켓이 순식간에 동난 것도 모자라 400명 추가 대기 예약을 받았다. 추운 겨울날 참여 인파가 넘쳐 클럽 바깥으로 긴 줄을 서야 했다. 클럽 안은 더 가관이었다. 30여명의 과학 커뮤니케이터들 지휘 아래 사인, 코사인, 원주율, 교집합 등 수학적 개념을 이용한 ‘매스 댄스(Math Dance)’를 추거나, 국내 최초 과학 래퍼 ‘사이언스웩’이 무대에 올라 ‘원소 주기율표 랩’을 선보이기도 했다.

사이언스나이트라이브. 한국과학창의재단 제공

한국과학창의재단 관계자는 “누가 올까 등 기획 당시부터 온갖 우려가 있었지만, 대중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과학이 먼저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행사를 진행했다”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0~30대 비(非) 이공계 전공자들이 밀어닥치면서 대성공을 거뒀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서는 과학 커뮤니케이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 할 만큼 유망한 분야”라고 덧붙였다.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 진행된 과학 버스킹. 유튜브 '과장창' 캡처

길거리에서 과학 실험 쇼를 펼치는 ‘과학 버스킹’도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커뮤니케이터와 시민이 1m 거리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시민들에게 하얀색 꽃을 나눠준 뒤 여기에 물을 뿌리자 꽃이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변했다. 놀라운 변신에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지만 원리는 의외로 간단했다. 하얀색 리트머스 종이로 만든 꽃에 알칼리 성분과 산성 성분의 지시약을 뿌린 것이다. 지난해 7월 버스킹의 성지 홍대 앞 걷고 싶은 거리에서 펼친 과학 버스킹에는 15분만에 600명의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파토(원종우 과학과사람들 대표)가 진행하는 과학 전문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는 2013년 시작해 7년 째 꾸준히 사랑을 받으며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한 회 평균 청취차가 50만명에 이른다.

◇잔잔한 재미 주는 과학 … ”이제는 알아야 할 때”

사람들을 과학 강연장, 혹은 과학 쇼 강연장으로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중학생 아들 손을 붙잡고 장 박사의 강연을 경청한 50대 주부 양정이씨는 “요즘 미세먼지를 비롯한 환경문제, 인공지능(AI) 같은 기술 문제 등 과학 이슈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 평소 관심이 많았는데, 과학적 지식을 쌓으면 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서 아들과 함께 과학 강연을 자주 들으러 다니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아들 박민석(14)군은 “지난주엔 부산대에서 ‘3D 프린터 기술을 활용한 창의 교육’ 특강을 듣고 왔는데 과학 이야기를 들을 때가 가장 재미있다”며 웃었다.

강진(56)씨는 “우리 어릴 땐 미디어에서 과학적인 게 별로 없었으니 괜찮았지만 요즘은 드라마 ‘알함브라의 궁전의 추억’에서 증강현실(AR)이 나오듯, 요즘에는 과학 기술을 모르면 아예 따라가지를 못 한다”며 “과학을 모른다고 해서 먹고 사는데 불편하지는 않지만 우리 생활 속에서 과학 아닌 게 없는데 과학을 알게 되면서 얻는 잔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10회 맞는 ‘10월의 하늘’

마침 올해는 ‘10월의 하늘’(https://www.facebook.com/10sky/) 10회를 맞는 해다. ‘10월의 하늘’이란 2010년 정재승 KAIST 뇌공학과 교수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과학자들의 작은 도시 재능 기부 과학 콘서트를 제안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10월의 하늘은 영화 ‘옥토버 스카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영화는 1957년 10월의 어느 날, 미국 작은 탄광촌에 살던 소년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별’, 즉 인공위성에 관한 기사를 본 뒤 로켓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이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그렸다.

우리나라 첫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꼽히는 정 교수는 여기에 착안했다. 매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에 각 지방 소도시의 도서관을 찾아가 재능 기부 과학 강연을 열자는 것이다. 뜻을 함께 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국 25개 도서관에 과학자 50명이 찾아가 강연을 열었다. 올해는 10회 맞이 기념으로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9월까지 릴레이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장 박사의 강연도 릴레이 강연 중 하나였다. 10월에는 전국 도서관 100곳에서 강연을 열 예정이다.

부산=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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