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대신 학령기 손주 돌보는 ‘할마’ ‘할빠’
서울시교육청 조부모 대상 교육 프로그램 운영
경기 분당구에 사는 강모(72)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손녀(7)의 하교 시간인 오후 2시쯤에 맞춰 매일 교문 앞에 가서 기다린다. 딸(40)의 직장생활 때문에 돌 무렵부터 손녀를 돌봐왔다는 강씨는 학교를 마친 손녀를 미술학원에 데려다 주기도 하고, 함께 집으로 와 간식을 챙겨 먹이기도 한다. 손녀가 들고 온 알림장을 보며 다음 날 수업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강씨 몫이다. 학부모 총회, 상담 등 학교의 중요한 행사는 가급적 딸이나 사위에게 휴가를 내 가라고 말하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강씨가 직접 챙긴다. 강씨는 “유치원 때와 달리 본격적으로 공부에 신경을 써야 하는 초등학교에 가니 할머니까지 긴장이 된다”고 말했다.
부모를 대신해 손주육아에 나선 조부모들의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손주가 학령기에 접어든 조부모들은 하나같이 마음가짐이 그 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잘 먹이고 잘 씻기고 잘 재우기’만 하면 됐던 영유아 때와 달리 정규 교육을 시작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동시에 할머니, 할아버지 역시 덩달아 긴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맞벌이 가구의 증가로 조부모 양육이 보편화하면서 아이가 행여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진 않을까, 공부에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여느 학부모라면 느낄 만한 고민들이 이제 ‘학조부모’들의 몫이 됐다. ‘할마ㆍ할빠(엄마, 아빠 역할을 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할머니(할아버지) 치맛바람’ 등 이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도 교육계에선 보편적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고민이 깊어진 학조부모들을 위해 교육 당국도 팔을 걷어 붙였다. 서울시교육청은 17개 시ㆍ도교육청 중 최초로 일선 학교에서 조부모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3일 밝혔다. 교육은 사전 신청을 통해 선정된 서울 5개 초등학교(삼전초, 염경초, 미래초, 신상계초, 중계초)에서 △노인세대의 자기탐색과 조부모 역할 이해하기 △손자녀 발달 및 학교생활 이해하기 △손자녀와 효과적인 관계 맺기란 주제로 총 6시간 진행된다. 학교생활에 대한 설명은 물론 양육 스트레스 진단,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대화법 등 손주와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한 내용도 포함됐다. 서울대 학부모정책연구소 소속 강사들이 각 학교 당 20여 명의 조부모들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한 뒤 다른 학교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교육청 참여협력담당관 학부모ㆍ시민협력팀 관계자는 “학령기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 대상 교육 필요성이 늘어남에 따라 해당 교육을 마련했다”며 “육아를 넘어 교육에도 적극 참여하는 학조부모의 역할을 재조명해, 당당한 교육의 참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