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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혈세만 축내는 거대 정당 카르텔

입력
2019.06.04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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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제공.

정당 보조금은 정치자금법에 ‘정당의 보호ㆍ육성을 위하여 국가에 지급하는 금전이나 유가증권’이라고 규정돼 있다. 보조금은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100분의 50을 정당별로 균등 분할 지급하고, 5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에는 100분의 5가 지급돼 군소정당에는 매우 불리한 제도다. 군소정당 난립을 막는다는 명분이겠으나, 소수를 배제하지 않는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법에 규정된 보조금 용도는 인건비 공공요금 등의 경상비, 정책개발비, 당원 교육훈련비, 선전비, 선거관계비용 등인데 그만큼 보조금이 정당에는 주요 수입원인 셈이다. 경상보조금 총액의 30% 이상은 정당법에 의한 정책연구소에, 10% 이상은 여성정치 발전을 위해 사용하도록 했으나 이대로 사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다소 장황하게 정치자금에 대해 기술한 이유는 정당 보조금의 존재 이유 때문이다. 정치자금법의 총칙에는 ‘정치자금은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으며, 헌법에도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정당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보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정당정치를 배제하고 대의제 민주주의가 운용될 수 없다는 대전제에서는 합리적 타당성을 갖는 조항들이다. 그러나 시민의 이익을 집약ㆍ표출하여 정책으로 산출하고 시민사회의 균열을 반영ㆍ조정하는 정당 기능이 구현되지 않는다면 이 조항은 정당성을 상실한다.

진영 논리에 매몰된 한국정치는 적대와 혐오를 넘어, 저주와 독설로 지지층을 결집하는 구태와 퇴행을 반복한다. 적대적 공생이라는 냉전시대의 논리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정치에 국민 세금이 속절없이 투입되고 있다. 국회와 정당은 오로지 선거에만 사활을 건다. 정당은 선거 머신(기계)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그들에게 정치의 기능인 사회통합과 갈등조정을 기대하는 것이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시점을 국한해서 보면 현재의 대치 정국은 한국당의 과도한 장외투쟁과 무리한 정치공학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갈등을 상시화하는 거대 정당의 카르텔 체제가 근본 원인이며, 다층적인 원인을 배제할 수 없지만 거대 정당의 기득권을 과다하게 인정하는 현행 정당 보조금 제도의 탓도 크다.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이 바뀌지 않으면 정당은 권력을 탐닉하는 이익집단으로 전락한다. 민주주의에 의해 구성된 정부와 정당, 선거는 민주주의의 수단이지 본질은 아니다. 영국의 정치사회학자인 톰 보토모어는 대의 정부와 정당, 선거가 중요한 틀을 제공해 주고 있지만 민주주의를 확립하기에는 그 자체로 부적합하다고 한다. 시민의 일반의지로 국정농단을 종식시키고, 권력을 사유화한 무리를 몰아 낸 한국에 적실성 있는 분석이다.

정치엘리트의 입신과 그들의 권력 탐닉의 도구로 전락한 한국정당들에 주어지는 보조금은 폐지하든지,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보조금 지급 여부와 종류 등 방식은 국가에 따라 많이 다르기 때문에 굳이 외국 사례를 들먹일 것도 없다. 한국정당 체제의 방식으로 운용되는 정당정치의 예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당개혁이 공론장에서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시민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기구는 검찰 경찰 등 선출되지 않는 권력뿐만이 아니다. 선출에 의해 구성된 국회와 정당도 선출 이후엔 시민통제를 벗어난다. 선거제도 개혁 등 제도화를 통한 정치의 정상화가 요원한 상황에서 보조금이 정당정치 발전에 기여하는지 여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가 됐다. 시민 이해를 대표하지 못하는 관료화한 거대 정당들, 갈등 조정은커녕, 대립을 구조화하고 증폭시키는 정당들에 보조금은 과분하다. 당비나 후원금, 기탁금으로 운영되는 원내정당화의 길을 모색하는 게 정치개혁 방향과도 맞는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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