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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讀古典] 장중경의 당(堂), 우리들의 당(黨)

입력
2019.06.04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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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따샤아란(大柵欄)의 동인당(同仁堂) 건물 전경. 동인당은 중국의 유명한 오랜 전통을 지닌 한약방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홍인기 기자
베이징 따샤아란(大柵欄)의 동인당(同仁堂) 건물 전경. 동인당은 중국의 유명한 오랜 전통을 지닌 한약방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홍인기 기자

옛날에는 한약방이나 한의원에 ‘무슨무슨 당(堂)’이라고 간판을 내건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한의학 관련 영업이 활발한 서울 경동시장이나 종로 5, 6가 근처에 가보면 이런 간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지방도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한의원이 ‘무슨무슨 당’이라고 이름을 내건다.

중국과 국교가 수립되고 왕래가 자유로워진 후, 한국에는 한때 중국 한약품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 최고 인기 상품은 ‘우황청심환(牛黃淸心丸)’이었다. 중국에 간 관광객들 역시 귀국 시에 ‘우황청심환’ 한 통은 들고 오기 마련이었다.

필자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아니 북경(北京)에서 유학생활을 했으니 일반 관광객들보다 훨씬 많이 산 것 같다. 대부분 북경 ‘동인당(同仁堂)’의 제품을 최고로 치며 구입했기 때문이다. 청나라 강희제 8년(1669년)에 설립된 동인당약실(同仁堂藥室)에서 시작한 동인당은 이제 약방이 아니라 거대그룹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동인당을 생각하면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르는데, 한국에서는 ‘우황청심원(牛黃淸心元)’이라고 했으므로, 한의학 지식이 전무했던 필자는 ‘우황청심환’을 가짜 약으로 오인하고 현지 점원과 실랑이를 벌였던 적이 있다.

‘동인당’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에서도 오래되고 유명한 한약방은 대부분 ‘무슨무슨 당’으로 작명한다. 중국인이 손꼽는 한약 노포(老鋪)는 천진(天津) 달인당(達仁堂), 제남(濟南) 굉제당(宏濟堂), 귀주(貴州) 동제당(同濟堂), 항주(杭州) 호경여당(胡慶餘堂) 등이 있다.

왜 옛날의 한약방 이름에 ‘당’을 넣게 되었는가. 그 사연은 한(漢)나라의 명의 장중경(張仲景, BC150~215추정)에서 시작된다. 의성(醫聖)으로 추존되는 그는, 중국 의학사에 획을 그은 임상치료학 명저 상한잡병론(傷寒雜病論)을 남겼다.

장중경의 의술은 대단했다고 한다. 이론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직접 치료에 열중하여 많은 생명을 구했으므로 백성들은 모두 그를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러다 헌제(獻帝) 건안 시기에 그가 장사(長沙)라는 지역에 태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하필이면 그때 그곳에 역병이 유행하게 되었다. 사망자가 속출하자 장중경은 크게 상심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병을 치료하러 민가를 방문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한나라 법에 태수는 민간인 집을 방문 할 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기도 하는데, 한나라는 관리에 대한 감찰과 규제가 엄격했다. 한나라 경제(景帝, BC157~141재위) 때 반포된 칙령에는 다음 같은 내용도 있다.

‘관리는 마땅히 백성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므로 관등에 상당하는 수레와 의복을 사용해야 한다. 특히 연봉 600석 이상의 관리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자세가 해이하여 관복을 입지 않고 멋대로 거리를 활보하는 등, 일반 백성들과 구별이 되지 않는 자가 많으니 용납하기 어렵다… 고관의 수레를 모는데 제복을 입지 않은 자, 고관의 수하로 길거리를 활보하여 관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자가 있다면 고발해야 한다.’

생략한 여타 내용도 구체적인 조항의 열거다. 대략 관리는 자신의 관등(官等)에 따른 특별한 색의 수레를 타야 하고, 외출할 때는 관복을 입어야 하며, 멋대로 길거리를 활보하다 발각되면 바로 고발 조치된다는 내용이다.

사정이 이러한지라 요즈음으로 말하면 공직자가 민간인한테 향응을 제공받기가 어려웠다. 어찌 보면 사적인 접촉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경제는 나라가 안정되면서 관리들의 힘이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여기서 초래할 부정부패를 염려했다.

물론 세칙이 가혹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공직에 있으면 공인(公人)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장중경은 엄격한 규정도 지키면서 백성도 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부득이한 방법을 생각해냈다. 자기가 집무를 보는 건물(公堂)에 ‘장중경이 당에서 치료한다(坐堂行醫)’라고 써서 깃발을 내걸었다. 그런 뒤, 하루 공무가 끝나면 백성들을 치료했다.

이렇게 해서 명의가 ‘당’에 앉아서 의술을 행하는 선례가 생겼고, 후세에 두고두고 미담으로 전해졌다. 사람들은 장중경을 기리며 그의 인품과 의술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에 점차 한약방이나 한의원에 ‘당’이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다. 장중경처럼 사심 없이 환자를 구하겠다는 뜻을 표방하기 위해서다.

이런 사연을 알고 난 뒤로는, 길거리에 보이는 한약방과 한의원의 상호가 무심히 보이지 않았다. 왠지 ‘당’이라는 약간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곳이 정겹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우리시대의 공무원이 제복을 꼭 입을 필요는 없지만 공인으로 처신하려는 자기 단속은 여전히 필요하다. 좋은 일을 하는데도 원칙을 지킨 장중경 같은 공직자가 많이 있기를 바란다. 제복을 입지 않았으니 눈에 띄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거리를 멋대로 활보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멋진 이름을 짓는다고 요란을 떨었던, 우리나라의 무슨무슨 ‘당(黨)’들은 한약방과 한의원에 내걸린 ‘당(堂)’이라는 글자의 뜻을 곱씹어 보기를 바란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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