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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스토리]돌아온 ‘일지매’ 유창혁 9단 “요즘 바둑이 어려워요”

입력
2019.06.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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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난해말 한국기원 사무총장 퇴임 이후, 현역 복귀…인공지능(AI)으로 열공

‘제3회 한·중·일 시니어바둑대회’ 우승하며 건재 과시…올해 23전16승7패(68.57%) 거둬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달성한 한국 바둑 전설…”매판 최선 다할 것”, 승부사로서 각오 다져

4월17일 중국 저장성 창싱현에서 열렸던 ‘제3회 한.중.일 세계시니어 바둑대회 결승에서 유창혁(맨 오른쪽) 9단이 중국의 위빈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이 대국에서 유창혁 9단이 승리, 생애 첫 시니어 우승컵을 획득했다. 한국기원 제공
4월17일 중국 저장성 창싱현에서 열렸던 ‘제3회 한.중.일 세계시니어 바둑대회 결승에서 유창혁(맨 오른쪽) 9단이 중국의 위빈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이 대국에서 유창혁 9단이 승리, 생애 첫 시니어 우승컵을 획득했다. 한국기원 제공

“죄송합니다. 힘들 것 같아요.”

공개 인터뷰 요청은 정중하게 사양했다. 아직까지 언론에 등장하기엔 때 이르다는 판단으로 보였다. 적지 않은 공백 기간을 거쳐 현역 기사로 돌아온 이후에도 상승 곡선이지만 승부사로서의 정신 무장에 더 집중하는 듯 했다. 세계 최고 공격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지매’, 유창혁(53) 9단과 지난달 중순 사회관계형서비스(SNS)로 시도한 첫 번째 접선에서 “당분간은 만남을 피하고 있다”며 돌아온 답변은 그랬다. ‘제3회 한·중·일 시니어바둑대회’(우승상금 약 1,700만원) 우승 직후,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자신에 대한 냉정한 경계로 읽혔다. 이로부터 한 달 후인 최근 진행한 2차 SNS 인터뷰에서의 분위기 또한 다르지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최근 근황과 목표 등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지난해 말 한국기원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이후, 다시 반상(盤上) 전사로 복귀한 유창혁 9단은 한국 바둑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주요 세계대회 우승 7회와 국내대회 19회 등을 포함해 그 동안 유창혁 9단이 수집한 우승컵만 26개에 달한다. 유창혁 9단은 특히 전성기 시절 후지쓰배(1993년)와 응씨배(1996년), 삼성화재배(2000년), 춘란배(2001년), LG배(2002년) 등을 모두 싹쓸이하면서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기록까지 작성했다. 현재까지 1958전 1267승 2무 689패(64.78%)를 거둔 유창혁 9단이 필드로 되돌아온 이후 성적은 23전16승7패(68.57%). 이 가운데 제한기전이긴 하지만 지난달엔 한·중·일 시니어바둑대회 우승컵을 차지한 생애 첫 시니어 타이틀도 포함됐다. 예전 기량이 녹슬지 않았단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2002년4월19일, 유창혁 9단이 조선일보 신관 6층에서 열렸던 ‘제6회 LG배 세계기왕전’ 시상식에서 우승컵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서 후지쓰배(1993년)와 응씨배(1996년), 삼성화재배(2000년), 춘란배(2001년) 타이틀을 획득한 유창혁 9단은 이 대회 우승으로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기록까지 작성했다. 한국기원 제공
2002년4월19일, 유창혁 9단이 조선일보 신관 6층에서 열렸던 ‘제6회 LG배 세계기왕전’ 시상식에서 우승컵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서 후지쓰배(1993년)와 응씨배(1996년), 삼성화재배(2000년), 춘란배(2001년) 타이틀을 획득한 유창혁 9단은 이 대회 우승으로 세계대회 그랜드슬램 기록까지 작성했다. 한국기원 제공

비결에 대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오랫동안 바둑을 쉬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아직은 낯설고 어렵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기원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약 2년 동안 떠나야만 했던 실전 대국의 감각 회복이 급선무란 게 유창혁 9단의 자체 진단이다. 겸손함으로 표현했지만 사실 유창혁 9단에게 패한 기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중국 바둑의 간판스타인 루이나이웨이(56) 9단과 마샤오춘(55) 9단, 녜웨이핑(67) 9단을 포함해 일본내 중견 프로바둑 기사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다카오 신지(43) 9단과 유키 사토시(47) 9단 등이 유창혁 9단에게 모두 패했다.

현역 복귀 이후,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인공지능(AI)에서 대답을 찾아갔다. “최신 바둑이 어려워요. 공부도 많이 필요합니다. AI 바둑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최근 바둑계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은 AI에 대한 연구 없이 요즘 바둑계에 흡수되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2016년3월, 혜성처럼 등장한 구글 딥마인드 AI인 ‘알파고’는 인간계 대표로 나선 이세돌(36) 9단을 4승1패로 완벽하게 제압하면서 세계 바둑계를 충격 속에 빠뜨렸다. 이후, 출몰한 중국 ‘줴이’와 중국 ‘골락시’, 미국 ‘마니고’, 중국 ‘골락시’, 한국 ‘한돌’을 비롯한 후속 AI에게도 현재 인간계 세계랭킹 1,2위인 커제(22) 9단이나 박정환(26) 9단조차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오랫동안 이어온 기존의 정석을 완전하게 파괴시킨 AI의 연구는 이젠 필수적이란 얘기다. 천하의 유창혁 9단조차 AI에 집착하는 배경인 듯 했다. “최신형의 공부가 많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어서 틈틈이 AI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포석이…” 유창혁 9단도 AI의 등장으로 가장 많은 변화를 불러온 포석단계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했다.

SNS 인터뷰 말미에선 목표가 궁금했다. “당장, 큰 목표는 없습니다. 기량은 예전보단 못하지만 한판 한판 열심히 두고 있습니다.” 목소리나 표정을 읽을 순 없었지만 승부사로서 돌아온 유창혁 9단의 의지를 감지하기엔 충분했다. 유창혁 9단은 7일부터 전남 신안군에서 열릴 ‘2019 1004섬 신안 국제시니어바둑대회’(우승상금 5,000만원)에 출전, 이 대회 초대 챔피언 벨트 사냥에 나선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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