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부터 배급까지 독과점” 우려… “영화시장 2조 시대 등 공헌” 반론도
“황금종려상 수상은 CJ가 있어 가능했다. 참 지독한 아이러니다.”(영화평론가 오동진)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의 황금종려상(칸국제영화제 최고상) 수상은 개인의 영예를 뛰어넘는다. 올해 100주년을 맞은 한국 영화계에 큰 선물이면서 문화계의 경사이고 국가적 기쁨이다. 국민 대다수가 환대할 수상 소식에 남다른 희열을 느낄 만한 회사와 인물이 있다.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CJ ENM과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다. ‘기생충’은 CJ ENM이 투자배급하고 이 부회장이 책임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이름을 올린 영화다.
CJ 입장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은 1995년 영상산업에 진출한 이후 24년 만에 세계 문화계 최고 봉우리 중 하나에 올라서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황금종려상 수상은 CJ ENM이 영화 등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미친 긍정적인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업계에 드리운 그림자를 새삼 들여다보도록 한다.
2019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CJ 없이 문화생활을 즐기긴 매우 힘들다. 영화를 볼라치면 CJ ENM이 투자배급한 영화인 경우가 많다. 다른 회사 영화라 해도 CJ의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 CGV에서 볼 가능성이 크다. 방송은 어떤가. 케이블채널은 CJ ENM판이나 다름 없다. 인기 채널인 tvN과 OCN, 채널CGV 등은 CJ ENM 보유 채널이다. 지상파 방송이나 종합편성(종편) 채널 드라마만 본다 해도 CJ ENM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다. 국내 최대 드라마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이 ‘납품’하는 인기 드라마가 많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드래곤은 CJ ENM 드라마사업본부가 2016년 분리 독립한 곳으로 CJ ENM의 자회사다. 공연장에도 CJ ENM의 영향력이 드리워져 있다. CJ ENM은 2000년대 초반부터 뮤지컬 시장의 큰손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내 소극장 CJ토월극장은 이름만으로도 공연에 대한 CJ ENM의 관심과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한민국 문화생활은 ‘CJ문화 라이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림웍스 주춧돌 삼아… 4조원대 ‘문화제국’
CJ ENM의 역사는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일제당(CJ 전신)이 그해 설립된 미국 엔터테인먼트 회사 드림웍스SKG에 3억달러를 투자하며 영상산업에 뛰어들었다. 드림웍스SKG는 스티븐 스필버그(영화감독)와 제프리 카젠버그(애니메이션 제작자), 데이비드 게펜(음악 프로듀서)이 의기투합해 만든 회사(SKG는 세 사람의 성 첫 자를 땄다)다. 설립만으로 세계 엔터테인먼트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업계 최고 전문가들 합작한 회사로 기존 시장질서를 뒤바꾸어 놓을 것으로 기대됐다. 제일제당은 지분 투자와 함께 아시아 지역 배급권을 얻었다. 미국에서 인맥을 다져온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을 따돌리고 이룩한 성과였다. 1993년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제일제당이 분가하자마자 ‘종가’를 제쳤다고 큰 화제를 모았다.
이후 CJ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공을 들였다. 1996년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체인 CGV를 설립했다. 1997년 당시 인기 케이블 채널이었던 음악 전문 엠넷을 인수했고, CJ ENM의 전신이라 할 회사 CJ엔터테인먼트를 만들었다. 2005년까지 CJ엔터테인먼트 깃발 아래 영화사업, 방송사업, 극장사업, 공연사업을 확장했다. 2010년 신설 법인 CJ E&M이 출범했고, 지난해 홈쇼핑 회사 CJ오쇼핑과 합병해 CJ ENM이 됐다.
CJ ENM의 지난해 매출액은 4조3,575억원이다. 홈쇼핑 사업 매출(1조2,935억원)과 케이블 플랫폼 사업 매출(1조498억원)을 제외하면 2조142억원이다. 오랫동안 국내 영상 분야에서 거대기업 역할을 해 온 지상파 방송사들의 총매출이 4조원대(2016년 3조9,987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CJ ENM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CJ그룹 계열사인 CGV의 지난해 매출은 1조7,694억원(국내 매출 9,748억원)이었다. CJ ENM의 시가총액은 4조원대다. 코스닥에서 두 번째로 높다. 자회사도 화려하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시가총액 2조원대인 거대 콘텐츠 회사다. 1,000만 영화 ‘해운대’(2009)와 ‘국제시장’(2014) 등을 제작한 JK필름, 스타 방송작가 박지은과 배우 전지현 등이 소속된 기획사 문화창고, 방송제작사 화앤담픽쳐스 등이 CJ ENM 우산 아래 있다.
CJ ENM의 위력은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지난해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닐슨코리아 집계 최고 시청률 18.1%)은 tvN에서 방영됐다. 제작사는 스튜디오드래곤이다. 올초 극장가에서 흥행 태풍을 일으키며 1,626만 관객을 불러 모은 ‘극한직업’은 CJ ENM 투자배급 영화다. 지난해 10만 관객을 모아 공연계 히트상품으로 꼽힌 뮤지컬 ‘광화문연가’는 CJ ENM이 제작했다.
◇문화 산업화 첨병… 짙은 어둠 걷어내야
대중보다 업계 관계자들은 CJ ENM의 힘을 더 강력하게 느낀다. 영화계에선 2000년대 초반부터 제작자나 감독이 시나리오를 들고 CJ ENM의 문을 먼저 두드리고 있다. 방송 채널 파워도 세다. tvN은 지상파 3사(KBSㆍMBCㆍSBS), 종편 JTBC와 함께 5대 방송으로 불린다. 외주제작사들이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기획안을 들고 CJ ENM을 우선적으로 찾고 있다.
힘이 세니 어둠도 짙다. 영화인들은 CJ의 수직계열화가 시장독과점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CJ ENM이 제작ㆍ투자배급업을 하고, 그룹 계열사 CGV를 통해 영화를 상영하며 시장을 지배하면서 부작용이 커진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기준 CGV의 스크린 수(1,146개)는 국내 스크린 수(2,937개)의 39%를 차지하고 있다. 한 중견 영화사 대표는 “CJ ENM이 투자배급에 그치지 않고 제작을 하는 데다 계열사 CGV까지 있으니 기존 영화사들의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CJ ENM의 시장 지배력이 약해지고 다양성이 커져야 봉준호 감독처럼 재능 있는 감독들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CGV의 자체 영화 상영 및 투자배급 브랜드인 CGV아트하우스가 다양성영화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점도 도마에 오르곤 한다. 극장 상영망을 내세워 영화 수입사와 독립영화사들을 포섭하거나 자신들에 유리한 계약 조건을 제시한다는 불만이 다양성영화업계에서 팽배한지 오래다. 한 영화인은 “수입사와 독립영화사들은 CGV아트하우스의 단독 상영작으로 결정되느냐 여부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노력도 많이 한다”며 “CGV아트하우스 눈에 들려고 경쟁을 해야 하니 CGV아트하우스 뜻대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방송계도 비슷하다. CJ ENM의 시장 지배력이 공고해지면서 불공정한 관행이 생기고 있다는 반발이 크다. 한 드라마 제작사 대표는 “드라마 기획안을 스튜디오드래곤에 들고 갔는데, tvN에서 방송하는 것을 계약 조건으로 내걸었다”며 “일종의 내부거래가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CJ문화제국’을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 CJ ENM은 한국 영화 등 국내 콘텐츠의 세계 진출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칸영화제에 경쟁부문, 비경쟁부문 가리지 않고 많은 영화를 내보내며 한국 영화 네트워크 구축에 노력했다. 칸영화제에서 본상을 수상한 한국 영화 6편 중 3편(‘밀양’ ‘박쥐’ ‘기생충’)이 CJ ENM 투자배급 작품이다. 한 영화사 대표는 “이미경 부회장이 10년 만에 칸영화제를 방문하면서 ‘기생충’ 수상에 힘을 보탠 것”이라며 “‘기생충’을 단시간에 192개국에 수출을 한 건 CJ ENM이니까 가능했다”고 말했다. CGV는 영화를 보다 가까이서 편리하게 볼 수 있는 관람 문화를 만들며 영화시장 2조원 시대를 여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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