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발생한 용산참사 원인이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있는데도 검찰이 소극적이고 편파적인 수사를 했다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판단이 나왔다. 당초 경찰 진압행위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의지가 없었을 뿐 아니라 유족의 참여를 배제한 긴급부검과 수사기록 열람 거부 등 총체적인 부실수사였다는 것이다. 과거사위는 검찰의 소극적인 수사에 청와대 등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런 지적에도 검찰 재수사 의뢰 없이 사과 권고로 매듭지은 것은 한계가 아닐 수 없다.
과거사위 조사 결과는 당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미 지난해 경찰청 진상조사위원회에서 밝혀진 대로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이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지는 참사로 이어졌다는 점은 재확인됐다. 화재 발생 위험이 큰 데도 사전연습과 안전장비도 없이 특공대를 투입한 것은 전적으로 경찰 지휘부 책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미리 철거민들의 화염병 투척을 참사 원인으로 전제하고 경찰의 진압작전에 면죄부를 주는데 급급했다는 게 과거사위 판단이다. 진압 책임자인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서면조사에 그쳤고, 관련 자료 조사도 누락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청와대 등의 개입 의혹이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은 ‘용산 사건으로 인한 촛불 시위 차단을 위해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이메일을 경찰에 보냈다. 서울경찰청장은 사이버 수사요원 수백 명을 동원해 경찰 비판에 반박 글을 올리게 한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철거민 8명에게 유죄가 선고돼 형을 살았지만 경찰은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청와대와 검찰, 경찰이 한통속이 돼 진실을 은폐하고 사건을 왜곡했다는 책임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이런 결론에도 불구하고 과거사위가 재수사 의뢰나 권고를 하지 않은 것은 유감스럽다. 관련 기록 폐기와 당시 수사 검사와 경찰관들의 비협조 등으로 인한 조사의 한계를 인정한다 해도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이나 책임자 처벌에까지 이르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조사 과정에서 전ㆍ현직 검사들의 외압 의혹이 불거진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용산참사의 아픔은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