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가 공구용품 브랜드가 없으니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국내 한 공구용품업체 관계자는 지난 24일 종방한 tvN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하숙’을 보며 이렇게 푸념했다. 방송에선 출연자였던 배우 유해진이 식기 건조대나 와인 거치대 등 가구를 직접 만드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만약 CJ가 공구용품 브랜드를 갖고 있었다면 당연히 방송에 노출시켜 상당한 PPL(간접광고) 효과를 봤을 거란 얘기다.
스페인하숙은 CJ ENM이 추구한 ‘콘텐츠와 커머스의 위력’을 보여준 결정판이라는 말이 나온다. CJ ENM 부문 오쇼핑의 자체제작 상품(PB)인 식기브랜드 ‘오덴세’가 방영 내내 화면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11부작이 방송되는 동안 스페인하숙은 최고시청률 11.7%(닐슨코리아)까지 찍으며 인기를 얻었고, 그 덕분에 오덴세의 매출도 껑충 뛰었다. 스페인하숙이 한창 방영 중이던 3~4월 오덴세의 매출은 방송 전보다 80% 가까이 증가했다. CJ오쇼핑은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장에선 오덴세의 매출 증가율이 무려 90%를 넘었다”고 밝혔다.
CJ ENM은 지난해 7월 방송과 음악 등 콘텐츠를 보유한 CJ E&M과 홈쇼핑, T커머스 등의 CJ오쇼핑이 합병하면서 새롭게 출범했다. E&M이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오쇼핑의 상품들을 선보여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그 효과는 곧바로 증명됐다. 지난해 CJ ENM의 매출은 4조3,576억원으로 2017년에 비해 9.7%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9.5% 증가한 3,15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매출액 1조1,048억원, 영업이익 92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95.6%, 66.1% 증가해 몸집을 불리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CJ ENM은 지난해 합병 이후 공격적으로 ‘콘텐츠 커머스’ 전략을 구사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오덴세를 투입했다.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치밀하게 전략을 짰다. 이 제품을 ‘미스터 션샤인에 나온 찻잔’으로 소개하며 T커머스를 포함한 2개의 홈쇼핑 채널에서 판매했고,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티빙’에 오덴세 관련 팝업창을 띄워 CJ몰로 한번에 유입되도록 했다.
지난 1월엔 톱스타 이나영 이종석 주연의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에 CJ오쇼핑의 PB인 패션브랜드 ‘지스튜디오(g studio)’와 ‘씨이앤(Ce&)’을 원 없이 노출시켰다. 각 브랜드의 모델이 이나영과 이종석이었다. 두 사람이 CJ ENM의 PB 의상을 입고 오덴세에 담긴 음식을 먹는 장면이 자주 전파를 탔다. 자사의 제품을 TV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광고하고 홈쇼핑과 T커머스 등으로 유통하는 ‘CJ왕국’의 성장은 거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방송업계에선 CJ ENM의 성장을 두고 “현실을 무시한 방송시스템이 만들어준 공룡”이라고 평가한다. CJ ENM은 지상파 방송이나 종합편성채널 등 방송사업자들이 갖는 의무나 규제 영역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방송시장 상황이 급변해 CJ ENM이 막강한 자본력과 영향력을 과시하며 ‘시장 포식자’로 변해가지만,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 기관이 제도적으로 이를 견제하고 제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CJ ENM은 홈쇼핑을 제외하고 tvN과 OtvN, 올리브, 온스타일, OCN, CGV, 슈퍼액션 등 20여개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 등 방송사업자들이 매년 방통위에 납부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이나 외주제작 의무편성 등에 대해서 CJ ENM은 자유롭다. 방통위는 “CJ ENM은 방송 승인∙허가사업자가 아닌 방송등록(신고)사업자이기 때문에 발전기금 징수 등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CJ ENM이 발전기금 징수 대상이 되려면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CJ ENM은 지상파 방송사들처럼 30% 이상 비율로 외주제작 프로그램을 편성할 의무가 없다. 방송 관계자는 “CJ ENM은 외주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을 두고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영화 부문처럼 수직통합 되고 있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고 말했다.
한석현 YMCA 시청자시민본부 팀장은 “협찬이나 제작지원 등 PPL에 대해 방송법도 기준이 애매하고 법 조항이 부족해 CJ를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