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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우리는 이 모든 것에 준비가 되어 있는가

입력
2019.06.01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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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신종 액상형 담배 ‘쥴(JUUL)’이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류효진 기자
24일 신종 액상형 담배 ‘쥴(JUUL)’이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류효진 기자

지인을 뉴욕의 한 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월가의 트레이더였고, 현재는 꽤 괜찮은 규모의 투자회사의 오너이자 대표이기도 하다. 그에게서 최근 월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속속들이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금융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의향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하나였다. 기화기(vaporizer)였다. 많은 독자들이 어떤 형태든 기화기를 한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기화기는 어떤 물체를 증기로 만들어 주는 도구이다. 그리고 천식 흡입기처럼 들이마시는 것이다. 지금 미국은 거의 모든 것을 증기로 만들어 흡입할 기세다. 그 정도로 기화기가 유행이다. 그는 최근에 그가 투자한 회사의 제품으로 노화를 방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증기로 만들어 마치 전자담배처럼 흡입하는 기화기를 설명해 주는데 열을 올렸다. 덕분에 필자도 덩달아 노화방지용 기화기를 공짜로 얻게 되었다.

미국의 기화기 붐은 ‘쥴’(Juul)이라는 전자담배회사의 성공을 보면 실감난다. 쥴은 2017년에 시작한 회사인데, 2018년 9월 이미 미국 전체 전자담배시장의 70% 이상을 점령했다. 이렇게 사업이 잘되니 투자자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다. 2018년 쥴은 담배회사인 필립모리스의 모회사로부터 투자 계약의 일부로 2조원이 넘는 돈을 받았고, 이를 직원들의 2018년 보너스로 썼다. 그 당시 쥴의 직원은 평균 한화로 약 14억원의 보너스를 받았다. 그렇다. 2017년에 회사를 시작했으니, 기껏해야 2년도 안 다닌 회사에서 평균 14억원의 보너스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쥴의 전자담배의 디자인을 보면 이 상황이 이해가 될 수도 있다. 담배가 아니라 날렵하게 생긴 USB 드라이버 같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전자담배의 아이폰’ 이라 불릴 만큼 디자인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것은 큰 문제를 낳았다. 담배가 멋지지 않던 시절에도, 다들 청소년 시절에 한번쯤은 호기심에 담배를 피워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담배가 예쁘고 멋지다. 많은 청소년들이 호기심에 한번쯤 해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멋져 보이려 시작했다가 나쁜 버릇으로 굳고 만다. 감독기관의 눈치와 여론 때문에 이제 없어지기는 했지만, 전에는 망고 맛도 있었다. 실제로 10%의 쥴 사용자가 청소년이라고 한다. 이는 물론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전자담배는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기화기와 전자담배를 연구하고 팔던 많은 회사들은 마리화나 흡입을 위한 연구 역시 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33개주에서 의료용 마리화나의 판매가 합법이다. 의료용 마리화나의 허용은 절대로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10개주와 수도인 워싱턴 D.C.에서는 21세 이상의 성인에게 레저용 마리화나 판매 역시 합법이다. 그리고 이를 허용하는 주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합법적인 마리화나 시장의 성장은 거의 40%에 가까울 것이라 예상된다. 그리고 이 추세는 2020년, 2021년까지 계속돼 2022년이면 2018년 시장의 두 배 크기가 될 것이라 한다. 올해 세계의 어느 시장도 마리화나 시장의 성장을 따라올 수 없다. 마리화나 산업만한 투자처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쯤되면 필자의 지인 같은 프로페셔널 투자자들이 기화기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분명히 보인다.

담배 피는 행위를 전혀 멋있다 생각하지 않는 필자도 지인이 준 노화방지용 기화기를 굉장히 즐겼다. 최고급 소재로 만들어진 슬림한 디자인에 들이마실 때마다 상큼한 허브냄새가 연기와 함께 나온다. 게다가 피우면 피부가 좋아진단다. 이제 쥴의 한국 판매가 시작됐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이 모든 것들에 준비가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특히 우리 아이들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영주 닐슨 스웨덴 예텐보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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