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만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2017년 10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對)이란 신정책’ 발표에서 이란 핵 합의 준수 여부에 대한 재인증 판단을 '불인증'하고 이 사안을 의회에 넘겼다. 그러면서 ‘60일 내에 대이란 제재를 재개할지, 새로운 국내법 개정안을 만들지, 기존 협정을 유지할지 여부를 결정해 달라’고 주문했다.
작년 5월 8일 그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탈퇴하고 11월에 이란 경제제재 재부과를 선언했다. 그 후속 조치의 하나로 이란산 초경질유 수입 유예 조치의 해제를 선언했다. 물론 중국ㆍ한국을 포함하는 8개국에 대해 이란산 원유를 제한적으로 수입할 수 있도록 180일간 제재 유예 조치를 내렸다. 그 유예 기간이 지난 5월 2일에 만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예 조치를 재연장하지 않기로 했고, 이란이 반발하면서 2019년 호르무즈의 위기는 급격히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고위 정치인들과 군 장성들은 서로에 대해 험악한 ‘말 폭탄’을 날렸고, 미국은 중동지역 미군기지와 페르시아만에 전략무기를 증원 배치했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맞서고 있다. 말 폭탄과 전략무기의 증원 배치는 친미 아랍국가들과 친이란 이슬람주의 단체들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작은 충돌이 큰 전쟁으로 변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인 것이다.
이란이 핵에너지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1957년 미국과 이란이 ‘원자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전제조건 하에 ‘아이젠하워 평화프로그램을 위한 원자’라는 협정을 맺으면서부터다. 이란은 1959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1968년에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이란 원자에너지기구’를 만들어 1967년에 ‘테헤란핵연구센터’를 설립하고 미국으로부터 5MW급 핵연구용 원자로도 도입했다.
이란-이라크 8년 전쟁 중이던 1980년대 중반부터 이란은 러시아ㆍ중국ㆍ북한의 기술 지원으로 미사일 생산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당시 핵무기 보유국으로 알려진 파키스탄과 방위협정을 체결했고(1989년 7월), 1990년대 초부터 핵의 자체 개발을 위해 핵연료 사이클 전방위 차원에서 핵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했다.
이란 핵 문제가 국제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오른 건 2002년 해외 망명 이란인들의 단체인 ‘무자헤딘 헐크’가 “이란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폭로하면서부터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2001년 9.11 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간전쟁을 수행했다. 이어 2002년 이란ㆍ이라크ㆍ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이듬해엔 이라크전쟁을 감행했다. 이란 핵무기 개발 시도에 대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하는 아랍국가들도 군비를 증강하고, 걸프와 지중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함으로써 군사적 긴장은 지속적으로 고조돼 왔다.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사탕)과 제재(채찍)가 동시에 시작됐다. 2000년대 초에 유럽연합(EU) 3국(영국ㆍ프랑스ㆍ독일)과 이란 간에 몇 가지 의미 있는 협상 결과물이 나왔고, 2006년 이란 핵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상정되면서부터 P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 간 협상이 시작됐다. 한편으로는 6차에 걸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안이 채택됐다. 미국은 포괄적 이란제재법(2010년), 국방수권법(2012년) 등의 국내법을 통해 이란 제재를 강화해 왔다.
이란 핵 문제가 위기로 치닫고 있던 2011년에 미셸 초스도프스키 교수는 ‘제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 다가오는 이란전쟁과 그 위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미국은 이란 핵 문제를 고리로 재래식 전략과 핵전략을 융합한 선제적 방어전쟁, 즉 명백한 공격 행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에 따른’ 선제공격 전략을 이미 마련해 놓고 제3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고 있다.”
P5+1과 이란 간 협상이 시작된 지 10년만인 2015년 7월14일 총 159쪽에 이르는 JCPOA에 합의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기였다. 2016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외에 모든 것’, ‘미국 우선주의’, ‘위대한 미국 재건’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후보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JCPOA를 ‘어리석은 짓’, ‘균형을 잃은 치욕’, ‘최악의 협상’, ‘최악의 계약서’라고 주장해 왔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조항을 찾아 전체를 재협상해야 한다”며 파기를 주장했다.
JCPOA에 대한 아랍국가들의 반응은 자국의 이해에 따라 세 그룹으로 나눠졌다. 회의론적 시각을 가진 친사우디 블록, ‘환희’로 받아들이는 친이란 블록, ‘제3의 길’을 가는 국가들로 갈라진 것이다. JCPOA 탈퇴 선언은 친사우디 블록의 노선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핵무기 보유, 이란의 핵무기 보유 시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원전 건설 추진, 가까운 파키스탄ㆍ인도 및 유럽 국가들(영국ㆍ프랑스)의 핵무기 보유 등으로 보아, 이란과 아랍국가를 대표하는 사우디는 핵 기술 및 핵무기 개발 의도를 버리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상당 기간 동안 중동의 국제관계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의 지원을 받는 사우디 중심의 수니파 벨트와 러시아ㆍ중국의 간접 지원을 받는 이란 중심의 시아파 벨트 간 분쟁 양상을 띠게 될 것 같다. 이 단층선은 석유-가스와 파이프라인, 미군의 중동 배치도와도 일치한다.
JCPOA의 핵심 내용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오직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만 핵 프로그램 및 핵에너지 권한을 갖는 대신에 이란이 핵 활동을 억제하는 것을 IAEA가 검증하면 미국 및 서구 국가들은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협정이 ‘최종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FVID)’에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인식했다. JCPOA에서 합의된 사용가능한 원심분리기 수, 우라늄 비축량 및 우라늄 농축 비율 제한(3.67%로 제한), 협정 유효기간(10~15년) 등에 대한 불만이다.
종파이익, 국가이익, 부족이익, 강대국들의 이해, 석유-가스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가 칡넝쿨처럼 얽혀서 크고 작은 단층선이 형성돼 있는 페르시안-걸프 지역에서 작은 충돌이 큰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 대통령이 B팀에게 들볶이고 있다”고 말했다. B팀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말한다. 이란에 적대적인 미국ㆍ이스라엘ㆍ사우디가 호르무즈 위기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이란 간 직접 전쟁이나 3차 세계대전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양국 간 ‘코피 터뜨리기’ 분쟁은 이해ㆍ종파ㆍ극단주의ㆍ문명 분쟁 등 다양한 성격을 띠고 있어서 그만큼 사태 해결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