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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형색색] 형벌의 목적, 왜 처벌해야 하는가

입력
2019.05.31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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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총회가 29일 열린 가운데 강효상의원이 한미정상 통화내용 유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기자
자유한국당 의원총회가 29일 열린 가운데 강효상의원이 한미정상 통화내용 유출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오대근기자

‘잘못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동의하는 명제이다. 이 명제는 직관적으로 충분히 설득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정의감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규범(規範)이자 정의(正義)이다. 다만, 이 명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예컨대 ‘잘못’이 무엇인가, 또 ‘벌’의 내용과 정도는 어떠한가. 이러한 고민들은 오랜 논의를 거쳐서 잠정적인 정의 내지 지역적인 규범으로 제도화하는데, 법전(法典)은 이러한 규범과 정의를 체계적으로 문서화한 것이다. 특히 ‘범죄와 형벌’에 대한 체계적인 목록과 문서를 형법전이라고 부른다.

‘범죄와 형벌’을 이해하기 위해 선행적으로 물어야할 것은 ‘누가’, ‘왜’ 형벌을 내리는가이다.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면 피해를 당한 자가 똑같이 복수를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문명화된 근대 사회에서 ‘사적 보복’은 철저하게 금지되어 있으며(긴급한 상황에서 ‘정당방위’와 같은 약간의 예외가 존재할 뿐이다), 오늘날 형벌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 왜 그럴까.

개인의 복수는 일률적으로 정형화될 수 없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표현되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이 쉽지 않은 것이, 한 대 맞았다고 똑같은 부위를 똑같은 세기로 때린다는 보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마다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다르고 측정불가능하며, 대개 사람들은 분(?)이 풀릴 때까지 복수하고 싶어 한다. 동해보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적인 복수를 정당화한다고 하도, 그 결과는 서로에게 늑대(homo homini lupus)인 상태가 되어 우리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사회가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통해, 또는 국가가 대리하여 복수를 수행하는 것, 이른바 공적 형벌은 개인과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불가피하다.

국가가 개인의 복수를 대리하여 집행함으로써, 형벌은 원초적이고 야만적인 (뜨거운) 복수 감정이 아니라 문명화된 고도의 (차가운) 계몽화된 이성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지점에서 형벌은 자신의 정당성 내지 목적을 단지 범죄에 대한 ‘복수’(응보) 뿐만 아니라 범죄를 계몽시키는 것, 다시 말해 범죄의 ‘예방’에서 찾게 된다. 요컨대 오늘날 국가 형벌의 목적은 ‘응보와 예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더 나가면, 응보와 예방은, (과거) 범죄 행위에 대한 평가를 통해 책임을 귀속시키는 좁은 의미의 ‘형벌’과, 범죄자의 위험성 평가를 통해 (장래의)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를 방위하기 위한 ‘보안처분’으로 구체화된다. 우리 형법전에는 생명형인 사형, 자유형인 징역 · 금고 · 구류, 재산형인 벌금 · 과료 · 몰수, 명예형인 자격 상실 · 자격 정지의 아홉 가지 형벌을 규정하고 있다. 한편 보안처분으로는 소년법, 보호관찰법, 치료감호법 상 규정되어 있고, 그 외에도 신상정보공개, 취업제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이른바 전자발찌), 성충동 약물치료(이른바 화학적 거세)가 있다.

생각을 한 단계 진전시켜보자. ‘응보와 예방’이라는 형벌의 목적은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까? 특히 범죄의 ‘예방’이라는 목적은 어떻게 달성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무거운 형벌이 예방을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범죄자가 무거운 형벌을 두려워하여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 예방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거운 형벌’이 아니라 ‘확실한 형벌’이라는 것이 그동안 많은 연구에서 드러났다. 1992년 노벨경제학상이 ‘범죄와 형벌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을 통해 범죄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범죄자를 확실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것을 논증한 게리 베커(Gary Becker)에게 주어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한미정상 간의 전화통화 내용을 전달하고, 또 전달받은 내용을 SNS 등에 공개한 일이 있었다. 한미정상 간의 전화통화 내용은 ‘외교상의 기밀’이므로 이를 합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몰래 전달(‘누설’)하였다면 형법상 외교상기밀의 누설죄가 성립하고(제113조 제1항), 누설할 목적으로 외교상의 기밀을 몰래 요청하고 전달받은 경우(탐지 및 수집) 역시 같은 죄가 성립한다(제2항). 설사 외교상의 기밀을 SNS 등에 공개한 당사자가 국회의원이라고 하더라도 이는 ‘국회 (내)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면책특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헌법 제45조). 만약 실정법을 어기고 범죄를 지지르면서까지 공익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여기에는 당연히 법 위반에 대한 진지한 긴장과 당사자의 처벌감수의사가 있어야 한다(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법위반과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관련 범죄를 무겁게 처벌하는 입법을 논의하기보다는 관련 법 위반자를 찾아내서 확실하게 처벌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범죄와 형벌의 본질일 것이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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