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우현 어메이징 브루잉 고문, 지난달 문연 이천공장 총괄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편견, 주세법 개정되면 바뀔 수 있어”
“은퇴할 때 만든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맥주공장 짓고 맛있는 맥주 만드는 게. 평생 할 줄 아는 게 맥주 만드는 거 하나였으니까.”
신축 공장을 소개하던 백우현(62)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고문이 신나서 말했다. “아침 7시 반에 출근해 늦으면 밤 11시에 퇴근한다”면서도 “공장 뒤는 산, 앞은 연못이 있는 배산임수 지형”이라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수제맥주 스타트업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가 지난 달 29일 경기 이천에 맥주공장을 열었다. 백 고문은 이곳의 설비 선정부터 공장 인허가 작업, 완공후 생산 효율화 작업을 총괄하고 있다. 1,800평 규모의 브루어리는 연간 맥주 500만ℓ를 생산할 예정이다. 이 회사가 서울과 인천에 낸 브루잉펍(맥주를 직접 만드는 매장) 총 생산량의 4배 규모다. 전국 익일배송 가능한 유통망을 확보했고, 공장에서 만든 맥주를 바로 즐길 수 있는 시음공간도 브루어리 곳곳에 마련했다. 갓 만든 밀맥주 ‘스노우 타이거’를 한 잔 내민 그는 “조만간 브루어리와 시음공간을 일반에 공개하고 견학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1983년 오비맥주에 입사해 딱 30년을 근무한 백 고문은 맥주업계 산증인으로 통한다. 오비맥주 이천공장, 광주공장의 자동화 생산 시스템을 갖춘 주인공으로 독일, 영국 등에서 맥주 제조와 경영 컨설팅도 공부했다. 백 고문은 “언제 어디서 먹어도 똑같은 맛을 내는 맥주 만드는 게 생각보다 쉽진 않다. 효모라는 살아있는 생물이 맛을 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맥주는 장치산업”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과 맥아, 홉이 맥주 맛을 좌우하지만, 그렇게 만든 맥주 맛이 균일하게 유지되는 데는 생산설비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국내 손꼽히는 브루잉펍에서도 맥주 맛이 들쑥날쑥 건 이 때문이다.
‘미사일보다 만들기 어렵다’는 ‘똑 같은 맥주 맛’을 365일 유지하는 게 백 고문이 30년간 했던 일이었고, 생산총괄전무를 끝으로 퇴임한 그에게 전 회사는 꼬박꼬박 월급을 주면서 3년간 재취업을 만류했다. 그만큼 아무나 흉내내기 어려운 기술이다. 백 고문이 전원주택을 짓고, 아내와 렌터카로 유럽여행을 하고, 봉사활동을 하며 버킷리스트 목록을 하나씩 지우는 3년 간 국내 맥주시장은 드라마틱하게 변했다. 편의점을 중심으로 수입맥주 ‘4캔에 만원’ 시대가 열리며 수입맥주가 국산맥주를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7년 가정 시장에서 수입맥주가 국산맥주 매출을 앞질렀다.
그즈음 김태경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 대표가 연락을 했다. 직원들에게 맥주 제조법을 가르쳐달라는 취지였다. “김 대표가 컨설턴트 출신이잖아요, 오비맥주 컨설팅한 적 있어서 전부터 안면이 있었어요. 마케팅 감각이 상당해요. 교육하면서 보니 직원들도 그렇고. 품질만 뒷받침하면 넘버원 브랜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맥주 품질도 넘버원이더냐’는 질문에 “솔직히 항상 잘 만든다고는 얘기 안했다”고 멋쩍게 웃었다. “대신 잘 만들었을 때 술은 어디 뒤지지 않고 맛있었죠. 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 이거죠. 공장 짓고 자동화 설비 갖추는 거. 제가 잘하는 거.”
2017년 말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가 대규모 맥주 공장을 짓기로 결정하면서 백씨를 고문으로 영입했다. 주세법 개정이 논의되면서 국내 수제맥주 가격이 떨어질 시기가 온 것이다. 백 고문은 “앞으로 투 트랙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베스트셀러 4종은 공장에서 대량생산해 전국으로 유통하고, 회사가 직영하는 펍에서는 이전처럼 시즌별로 다양한 수제맥주를 선보인다”고 말했다. 직영 펍에서도 베스트셀러 4종을 맛볼 수 있다.
지난해 공장 부지가 경기 이천으로 낙점됐다. 백 고문은 올 봄 부친상을 당한 하루를 제외하고 주말에도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은퇴 후 3년간 쉬지 않았다면, 맥주공장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매달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제대로 된 수제맥주 공장을 짓는 게 절실한 꿈이었다. 독일 크로네스 양조 설비를 비롯한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와인과 위스키를 담았던 오크통에 맥주를 넣어 숙성시키는 ‘배럴에이징’ 창고도 만들었다.
‘공장에서 만든 수제맥주는 이전보다 더 싸게 받냐’는 질문에 “그러려고 (공장) 지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말하면 대표가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술이 조금은 있어야 하거든요. 한잔에 7,000~8,000원이면 제 입장에서도 자주 먹기 부담스러워요. 카스는 너무 낮고 펍에서 파는 수제맥주는 너무 높고 그사이 가격대 제품이 있어야죠.”
단 “주세가 바뀌면”이라는 조건이 붙었다. 출고가에 세금을 붙이는 종가세가 알코올 양에 세금을 붙이는 종량세로 바뀌면 맥주에 붙는 세금은 지금보다 줄어든다. “대기업에서 힘들었던 게 (종가세라) 생산 비용을 더 들이면 세금도 더 붙으니까 무조건 단순화 시켰거든요. 재료도 패키지 디자인도. (주세법 개정은)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느니 다양성이 없다느니 하는 말이 나오는 악순환을 바꿀 찬스라고 봐요. 무조건 세금 적게 걷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맥주가 대중적인 술이라는 걸 정부가 인정하는 거거든요.”
백 고문의 버킷리스트에서 마지막 한 줄이 남았다. 맛있는 맥주 출시다. 백 고문은 “공장 짓기 바빠 정작 맥주에 대해서는 대표와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다”면서 “깨끗하고 가벼운, 한 잔 먹고 나면 또 한잔 먹고 싶은 수제맥주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수제맥주 제조사의 대표 브랜드는 에일 맥주나 IPA에요. 국내 수제맥주 회사들이 입맛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고 그런 술이 수제맥주의 꽃이라고 생각하는데, 공장 크게 짓고 나면 메인 브랜드를 갖고 있어야 하거든요. 기네스 같은 특별한 회사가 아니면 필스너나 라거가 맥주회사 대표 브랜드에요. 모든 회사가 그걸 갖고 있어요. (체코)필스너 우르켈의 수제맥주 버전, (일본)산토리 프리미엄 몰츠의 수제맥주 버전 같은 제품을 만드는 게 다음 목표예요.”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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