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동료와 산책을 했어요. 늘 그러했듯 꽃 핀 나무들, 다리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함께 바라보았어요. 이제 나는 동료보다 훨씬 많은 나이가 되었고, 여전히 젊은 동료는 나에게 말해요. “너도 내가 있는 곳으로 올 거야,/어느 일요일이나 어느 토요일에,” 역시 그곳으로 먼저 간 나의 동료는 현명해요. 내가 동료가 있는 곳으로 가는 요일이 월요일이나 금요일이어도 그날은 비로소 안식일, 아니면 왜 그토록 열심히 몰두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던 지상의 일에서 놓여나는 토요일일 테니까요.

동료가 죽던 날 만발했던 밤나무 꽃이 오늘도 눈처럼 내려요. 밤나무 꽃 향기로 그가 내 곁에 나란하다는 걸 느껴요. 나는 그와 ‘함께’이다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다가, 돌연 내가 혼자임을 깨달아요. ‘돌연’은 시간의 평온을 깨트리는 부사지만, 사람들에게로 되돌아왔다는 ‘그리고’는 담담한 마음이에요. 혼자에 펄쩍 놀라 되돌아왔다기보다는 흔들리는 시계추의 거리로 받아들여요. 그런 심정 같아요.

10주기… 1주기… 5주기… 그와 함께 산책하는 오늘은 그의 새로운 생일. ‘존재한다’는 삶과 죽음으로 가를 수 없는 것이기도 하여서, 마음에 품고 기리는 그가 있다면 그는 나를 품어주는 심장이고, 나의 박동에 겹쳐 뛰고 있는 박동이에요. 동료는 “함께”에 나란한 단어지요. 어깨가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느껴지는 기척, 문득 팔을 척 어깨에 걸치는 의기투합의 가능성. 그래서 함께, 매년 기일에는 눈처럼 내리는 흰 꽃 사이로 그와 산책할 수 있어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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