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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이어 김경주 대필까지…윤리의식 사라진 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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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표절 이어 김경주 대필까지…윤리의식 사라진 문단

입력
2019.05.29 18:41
수정
2019.05.30 10:55
22면
0 0
2016년 2월 서울 이태원 해방공간에서 열린 흑표범 작가의 퍼포먼스 전시 'VEGA'. 전시 도록에 김경주 시인의 이름으로 게재된 비평은 알고 보니 차현지 작가가 쓴 것이었다. 흑표범 작가 제공
2016년 2월 서울 이태원 해방공간에서 열린 흑표범 작가의 퍼포먼스 전시 'VEGA'. 전시 도록에 김경주 시인의 이름으로 게재된 비평은 알고 보니 차현지 작가가 쓴 것이었다. 흑표범 작가 제공

베스트셀러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 2016년 발표한 글을 다른 작가가 대필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문단의 윤리 의식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대필 사건의 주인공은 김경주(43) 시인과 차현지(32) 작가다. 2003년 등단한 김 시인은 베스트셀러 시집인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2006) 등을 냈으며, 2009년 김수영문학상과 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 받았다. 차 작가는 2011년 소설로 등단했다. 두 사람은 김 시인이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초빙교수를 맡은 2010년 교수와 학생으로 만났다.

문제의 글은 2016년 미디어아티스트 흑표범의 전시 도록에 김 시인 이름으로 실린 ‘서쪽 건너에 비치는 환시’라는 제목의 비평이다. 차 작가가 대필한 글이었다는 것이 3년 만에 알려진 사연은 이렇다. 차 작가는 지난 4월 대필 전력을 고백하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누구의 글을 대필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김 시인은 이달 초 흑표범에게 갑자기 연락해 대필 사실을 고백했고, 흑표범은 사실 확인 끝에 지난 2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도록 글의 필자명을 (김경주에서 차현지로) 정정한다”고 알렸다.

흑표범 작가가 27일 본인의 SNS에 올린 작가 이름 정정에 관한 게시물. 흑표범 작가 제공
흑표범 작가가 27일 본인의 SNS에 올린 작가 이름 정정에 관한 게시물. 흑표범 작가 제공

김 시인은 대필 사실을 공식 시인했다. 그는 29일 한국일보에 보낸 입장문에서 “2016년 흑표범 작가에게 원고 청탁을 받았으나 작가로서 부담이 됐다”며 “평소 미술 평론에 관심이 많던 차 작가가 본인이 써보고 싶다고 했고, 합의 하에 차 작가가 원고를 작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시인 은 이어 “세금을 제외한 원고료 전액에 제 돈을 보태 차 작가에게 보냈다”면서 “차 작가와 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자 함께 결정한 일로, 강요에 의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겁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김경주 시인.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경주 시인. 한국일보 자료사진

차 작가는 자신이 먼저 대필 제안을 했다는 김 시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김 시인이 먼저 대필 제안을 해왔다”며 “당시 저는 작가적 자의식이 없는 신인이었던 데다 글을 쓸 기회가 너무나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또 “대필을 제안하고 수락하는 관계는 결코 수평적인 관계일 수 없다”며 “다른 신인 작가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대필 사실을 밝히게 됐다”고 말했다.

누가 대필을 제안했든, 뒤늦게 대필을 고백한 사정이 무엇이든, 김 시인과 차 작가 모두 문인의 윤리를 저버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5년 표절 시비로 문단을 떠났던 신경숙 작가가 최근 창작과비평이라는 문단 권력을 업고 전격 복귀한 데 이어, 문단의 구태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무성하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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