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극단 산울림 제공

명동예술극장에서 극단 산울림이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 중이다.(5월 9일~6월 2일)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국 초연은 1969년 한국일보가 사옥 안에 소극장을 마련하면서, 연출가 임영웅에게 개관 기념 공연을 맡긴 것이 계기가 되었다. 임영웅은 이 공연의 성공에 고무되어 이듬해에 극단 산울림을 창단했고, 이후 50년 동안 자신들의 고정 레퍼토리로 삼았다. 나는 이 작품을 송영창(블라디미르)과 안석환(에스트라공)이 호흡을 맞춘 1996년 공연으로 보았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줄거리를 가졌다. ‘고도를 기다린다, 오지 않는다, 그래도 고도를 기다린다.’ 두 시간이 넘는 동안 관객이 마주해야 하는 것은 두 주인공 스스로도 그의 도래를 믿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고도의 부재이다. 오지 않지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행위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의미는 선택적이다. 즉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는 절망이지만, 그래도 기다린다는 것에는 일말의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자택일을 뿌리치자.

고도를 기다리기만 하고 찾아갈 줄 모르는 두 주인공의 수동성은 불가사의하다. 이들의 수동성과 무기력은 오로지 플라톤의 우화에 나오는 동굴 속의 죄수하고만 비교가 가능하다. 동굴의 죄수는 어릴 적부터 사지와 목을 결박당한 상태로, 동굴의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만 보도록 되어 있다. 이 죄수들은 누군가가 그들의 목을 돌려 등 위의 불빛을 바라보게 강요당할 때, 빛의 눈부심에 고통을 당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역시 고도라는 광휘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 빛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종종 그 빛을 꺼버린다.

이 연극의 진정한 절망은 고도가 오지 않는 것에 있지 않다.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유아성과 자기기만은 설사 고도가 오더라도 고도를 알아 볼 능력이 그들에게 없다고 말한다. 예컨대 작중 어느 대목에서 에스트라공은 자신을 예수라고 선언하고 있으나, 그와 50년을 동고동락했던 블라디미르는 그의 말을 귓전으로 흘러 넘긴다. 에스트라공은 재림했다고 뻥을 치는 숱한 ‘가짜 예수’ 가운데 또 한 명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이런 질문은 지금까지 이 작품에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몰랐던 상투적인 독해를 모두 기각한다.

‘고도는 누구인가’, ‘고도는 왜 오지 않는가’, ‘언제까지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이제 그만두자. 대신 고도가 왔을 때 ‘우리에게 고도를 알아 볼 능력이 있는가’, ‘우리에게 진짜와 가짜 고도를 구별할 능력이 있는가’라고 고쳐 묻자. 그럴 때, 이 연극의 진정하지만 숨겨진 절망이 나타난다. 인간의 근원적 절망은 고도가 오지 않는 따위에 있지 않고, 고도가 우리 앞에 나타나더라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무능력에 있다. 인간은 이미 항상 와 있는 메시아에게 ‘언제 와’라고 묻는 어리석은 아이면서, 지금 이 순간도 무수한 메시아를 죽이고 있는 모순된 아이다.

베케트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빈약한 어휘와 어리석은 천진난만(자기기만)을 지니고 있으며, 능동성이 거세되어 있다. 이들은 유아기나 아동기에 성장을 멈춘 애벌레들이다(베케트의 어떤 주인공들은 아예 항아리 속에 들어 있다). 베케트의 주인공을 특징짓는 이러한 수동성은 베케트 세대가 겪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전쟁과 폭력은 인간의 능동성이 불러낸 참화였다. 이 때문에 베케트는 그것에 대한 정화내지 거부로 수동성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 수동성에는 정치ㆍ사회적 배경을 뛰어넘는 또 따른 철학적 배경이 있다.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주인공 로캉탱이 손에 쥔 조약돌로부터 구토를 느끼는 장면이다. 자기의식을 갖추지 못한 사물의 즉자성과 무상성이 구토를 유발한 것이다. 반면 베케트의 장편소설 ‘몰로이’(문학과지성사, 2008)의 주인공은 사르트르의 존재하려는 노력을 정면으로 패러디하고 조롱한다. “나는 주머니에서 조약돌 하나를 꺼내 빨았다. 동그랗고 매끄러운 작은 조약돌 하나를 입에 넣으면, 평온해지고 기분전환이 되며, 배고픔도 달래고 갈증도 잊을 수 있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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