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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비판 독설 쏟아낸 양승태 “법치주의 파괴한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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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비판 독설 쏟아낸 양승태 “법치주의 파괴한 수사”

입력
2019.05.29 17:30
수정
2019.05.29 20: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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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의혹 정점인 양승태(왼쪽부터) 전 대법원장, 고영한ㆍ박병대 전 대법관이 2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 정점인 양승태(왼쪽부터) 전 대법원장, 고영한ㆍ박병대 전 대법관이 2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수사는 특정 인물을 반드시 처벌하기 위한 사찰이었다. 법치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에 위배되는 수사다. 검찰의 공소사실은 소설 같은 이야기다.” 법정에 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과 독설을 쏟아냈다.

양 전 대법원장, 고영한ㆍ박병대 전 대법관이 피고인 자격으로 출석해 나란히 앉고,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 전ㆍ현직 고위 법관들이 대거 증인으로 채택된, 법원이 스스로 법원의 잘못에 대해 판단해야 하는 사법농단 재판이 29일 마침내 시작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진행된 재판은 417호에서 열렸다. 이 법정은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진행됐던 곳이기도 하다. 불구속 상태인 고영한ㆍ박병대 전 대법관이 먼저 법정에 들어왔고, 이윽고 구속 상태인 양 전 대법원장이 법정에 모습을 나타냈다. 양 대법원장이 들어올 때 전 대법관 두 명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가볍게 예우를 갖췄다.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때 재판부가 직업을 묻자,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없다”고 대답해 ‘무직’으로 기재됐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은 광범위하게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혐의 사실이 많다 보니 이날 검찰은 공소사실을 파워포인트(PPT)로 요약 정리해 제시했다. 혐의 사실 설명에만 1시간 넘게 시간이 걸렸다. 이어 피고인 측에게 발언권이 넘어갔다.

양 전 대법원장은 혐의를 완전히 부인했다. “모든 것은 근거가 없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정말 소설, 픽션 같은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그는 “공소장을 보면 재판거래는 온데간데 없고 겨우 휘하 심의관들에게 몇 가지 문건을 작성하게 한 것이 직권남용이라고 하고선 끝난다”면서 “법률가가 아닌 미숙한 소설가가 쓴 소설이라 생각될 정도로 법적 허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용두사미도 이런 용두사미가 없다” “용을 그리려다 뱀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고도 했다.

검찰 공소장이 불명확하다며 “권투하는데 상대방 눈을 가리고 두세 사람이 때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인사심의관 A ‘등’으로 하여금 보고서를 작성하게 하는 ‘등’ 의무없는 일을 하게했다”는 공소장 문장을 예로 들어 “‘등’은 둘 이상을 뜻하니 적어도 네 개의 행위가 있다는 것인데 알 수 있는 행위는 하나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재판만 빨리 하자는 건 골대를 세워놓지도 않고 축구하자는 것”이라 주장했다. 매주 두 차례씩 열릴 촉박한 재판 일정을 비판한 것이다.

더 나아가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 자체가 부당하다 주장했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해임된 날까지 모든 직무행위를 샅샅이 뒤져 법에 어긋나는 것을 찾아내기 위한 수사”라면서 “사찰이 있다면 이런 것이 사찰”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사람의 처벌거리를 잡아내기 위한 수사는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수사,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수사이며, 그런 수사야말로 권력남용이다”고 단언했다. “이런 수사가 허용 된다면 국민 누구도 안심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증오하는 권력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복종하는 나라만큼 비참한 나라가 없다”는 경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은 “재판거래니 사법농단이니 말 자체만 무성했던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려 온 상황에 대해 어찌 가슴 터질듯한 통한이 없겠냐”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서 많은 법관이 검찰로부터 겁박당한 행간을 보자니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다”고도 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 역시 “폭넓은 재량을 가진 사법행정을 직권남용이라는 형사범죄로 처벌한 사례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재판을 통해 그간 잘못 알려진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 사법부 신뢰가 회복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5일까지 서류증거 조사를 마친 뒤 본격적인 증인 신문 절차에 돌입한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미 검찰이 신청한 증인 211명 중 핵심 증인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비롯,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 26명을 증인으로 채택해둔 상태다. 재판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열린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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