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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 유탄 맞아… 중국 국제박람회 ‘집안잔치’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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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 유탄 맞아… 중국 국제박람회 ‘집안잔치’ 전락

입력
2019.05.29 15:51
수정
2019.05.29 20:28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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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개국 참가 홍보, 실제론 50개국… 트럼프 맞서 개방이미지 강조

미국 업체 6곳은 한적한 구석 배치… 외교당국 무관심 속 한국도 들러리

중국 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 1층 전시장의 가장 목 좋은 곳에 자리잡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부스. 맨 위에 '과학기술로 미래를 바꾸고, 지혜로 도시를 밝히자'고 적혀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중국 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 1층 전시장의 가장 목 좋은 곳에 자리잡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부스. 맨 위에 '과학기술로 미래를 바꾸고, 지혜로 도시를 밝히자'고 적혀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삼성도 언제 우리와 협력을 중단할지 모르잖아요.”

중국 베이징에서 28일 개막한 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CIFTIS) 전시장. 장페이(張飛) 화웨이 고객담당이사는 두 달 후 출시 예정이라는 폴더블폰을 이리저리 뒤집어 보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제품의 액정은 삼성이 아닌 중국 업체의 부품을 장착했다는 것이다. 이어 “화웨이 스마트폰 액정의 50%는 삼성, 20%는 중국 국내 업체, 나머지는 다른 회사 제품을 쓰고 있다”며 “요즘의 국제 경제 상황을 고려해 이번에는 국산 부품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화웨이가 대미 항전의 선봉대인양 연일 부각되는 터라 회사 분위기가 궁금했다. 조심스레 묻자 그는 “별로 달라진 건 없다”며 “제품을 판매하는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사이 관람객이 하나 둘 몰려들더니 주위를 에워쌌다. 무역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 미국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화웨이에 대한 이심전심이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전시장이 1층 중앙 통로의 눈에 잘 띄는 곳에 큼지막하게 자리잡은 덕에 오가는 발걸음이 자연스레 화웨이 부스로 향했다. 한 관람객은 “화웨이의 5G 기술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무역전쟁을 겪으면서 왜 핵심기술을 독자 개발해야 하는지 절실히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 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 전시장에서 찾은 통신회사 차이나유니콤(리엔통) 부스. 미국의 견제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5G를 타이틀로 내걸었다. 회사 관계자는 "화웨이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질문에는 일절 함구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중국 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 전시장에서 찾은 통신회사 차이나유니콤(리엔통) 부스. 미국의 견제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5G를 타이틀로 내걸었다. 회사 관계자는 "화웨이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질문에는 일절 함구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중국은 올해 6회째를 맞아 이 행사의 이름을 미묘하게 바꿨다. 당초 ‘중국(베이징)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에서 ‘베이징’이라는 부분을 쏙 빼냈다. 특정 지역 위주가 아니라 전세계를 상대로 열린 행사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시진핑(習近平) 주석도 이날 축하서신을 통해 “중국은 더 높은 수준의 대외 개방을 촉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글로벌 경제가 개방과 포용, 공영의 방향으로 발전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우선주의’의 폐쇄성과 오만함을 겨냥한 발언이다.

반면 행사장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주최측은 130여개 국가와 국제기구가 참가한다고 홍보했지만 현장에서 확인해보니 50여개에 불과했다. 전시장 규모를 15만㎡로 예년에 비해 3배 늘렸다고는 하나 1층 노른자위는 죄다 중국 업체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특히 관람객이 제일 먼저 찾기 마련인 1층 전시장의 절반 가까운 공간을 중국 각 성(省)의 홍보관으로 운영하는 바람에 국제박람회가 아니라 마치 지방자치대전을 둘러보는 듯했다.

안내문에는 6개의 미국 업체가 참가했다고 적혀 있었다. 무역전쟁의 최전선에서 직격탄을 맞는 곳이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수 없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지하 1층 한 켠에 볼품없이 몰려있는 전시부스를 발견했다. 관람객이 거의 없어 한산하다 못해 썰렁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중국 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 전시장에서 한참 돌아다니다 겨우 찾은 미국대두수출협회 부스. 지하에 자리잡은 탓에 관람객이 거의 없어 썰렁하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중국 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 전시장에서 한참 돌아다니다 겨우 찾은 미국대두수출협회 부스. 지하에 자리잡은 탓에 관람객이 거의 없어 썰렁하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하지만 말을 건네자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소신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자오량(趙亮) 미국대두수출협회 베이징지사 대표는 “예전에는 3,400만톤의 대두를 중국에 팔았지만 이제는 1,000만톤에 그치고 있다”며 “미국 대두를 홍보하면서 동시에 중국 정부의 정책도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러 왔다”고 말했다. 양국 사이에 끼여있는 협회의 얄궂은 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무역전쟁으로 미중 양국 모두 큰 손해를 보고 있어도 피해자인 우리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미 상무부와 농림부, 각 주정부에 입장을 전달하고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촉구할 뿐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도통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중국 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 전시장에 조성된 '일본관'. 전시장 1층을 꿰차고 종일 관람객을 맞이했다. 반면 한국 업체들은 한국관 타이틀은커녕 지하 전시장 구석으로 밀려 대조적이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중국 국제서비스무역박람회 전시장에 조성된 '일본관'. 전시장 1층을 꿰차고 종일 관람객을 맞이했다. 반면 한국 업체들은 한국관 타이틀은커녕 지하 전시장 구석으로 밀려 대조적이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한국 업체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중국은 이번 박람회를 국가급 행사로 성대하게 선전했지만 외교당국은 우리 업체의 참가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장하성 주중대사가 줄곧 강조해온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무색할 정도였다. 지하 전시장에서 만난 한 업체 대표는 “개인적 인맥을 통해 오게 됐다”면서 “1층은 임대료가 비싸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일본 업체들은 1층 전시장 한복판에 ‘일본관’ 타이틀을 내걸고 관람객을 맞이하며 종일 북적댔다.

중국은 그간 연례행사로 치러온 이번 박람회를 내달 베이징에서 다시 열기로 했다.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행사 주제를 여행으로 잡았다. 한쪽에는 관람객을 붙잡기 위한 무료 입장권이 잔뜩 놓였다. 미국의 공세에 맞서 어떻게든 개방적 이미지를 강조하려 중국은 그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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