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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어느 2기 신도시 주민의 강남 출근기

입력
2019.05.30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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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나는 어쩌다 보니 2기 신도시로서 이제야 제법 꼴을 갖춘 파주 ‘운정’에 산다. 나는 어쩌다 보니 한강 아래 ‘강남’ 신사동에 본사가 있는 직장엘 다닌다. 하루 약 4시간의 출퇴근. 일주일에 20시간을 쓰고 있으니 주 52시간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셈이다. 그리고 이 길 위의 시간은 신도시 주민의 삶을 폭력적으로 점거한다.

이 점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방식으로 출근해야 할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 요일마다 조금씩의 요령은 있지만 그때그때 교통상황에 따라 출근 시간은 고무줄처럼 늘어지고, 좋은 선택은 시간의 고무줄을 탄탄하게 할 수 있다. 월요일은 전철을 타는 게 좋다. 아파트 단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대화역 공영주차장에 자가용을 세우고 전철로 갈아탄다. 주차비를 내느니 대화역까지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좋겠지만, 그 버스라는 게 돌고 돌아 역까지 40분이 넘게 걸리니 선택지가 안 된다. 대화역의 배차 간격은 출근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5분에서 8분 정도. 그나마 경의중앙선에 비교하면 매우 촘촘한 편이다. 노약자석을 제외한 모든 자리가 종점에서부터 가득 차기에 주엽역이나 백석역의 승객은 대화역까지 역주행해 자리에 앉기를 택하기도 한다. 신사역까지는 1시간 10분 정도가 걸린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뉴스를 뒤적이고 눈을 붙이고 별별 짓을 다 했는데, 겨우 안국역일 때의 그 아찔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른 전철로 경의중앙선이라는 게 있다. 있기는 있다. 필요 이상으로 느긋한 배차와 잦은 고장과 지연 등으로 파주 일산 주민의 평균 수명을 깎아 먹고 있다는 평이다. 다른 선택지로는 광역버스가 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은 길이 덜 막히고, 좌석도 전철보다 쾌적하다. 어지간히 깊은 잠에도 옆 사람을 방해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경기도민에게 광역버스는 부숴버리고 싶은데 또 소중히 갖고도 싶은 애증의 대상이다. 운정에서 강남 가는 유일한 광역버스 G6426은 면 단위도 아닌데 배차 간격이 30~60분이다. 자유로로 진입하기 전 마지막 정류소에는 20분을 기다렸어도 버스가 만석이라 올라타지 못한 자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메아리친다. 버스에 올랐다 하더라도 자유로와 강변북로에 예기치 않은, 그러나 종종 벌어지는 교통난으로 한강을 언제 건널지 모르게 된다. 강남터미널에서 출발한 충청도나 강원도 버스가 G7426보다 먼저 도착지에 닿기도 했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자차 운전을 한다. 도로가 막힐까 봐 새벽에 나서는데, 어느 날 갑자기 졸음이 찾아와 눈꺼풀을 당기면 거기가 바로 전쟁터다. 하긴 출근과 퇴근을 합쳐 하루에 4시간을 써야 하는 삶을 딱히 행군이 아니라 하기도 어렵겠다.

3기 신도시 개발 소식은 출근길에 스마트폰에서 보았다. 언론에서는 1기ㆍ2기 신도시 주민의 박탈감이 크다고 한다. 그게 다 집값 때문이라고 한다. 글쎄 그게 그런가? 집값이야 오르면 좋고 떨어지면 섭섭하지만, 그뿐이다. 떨어지거나 오르거나 우리 가족은 거기에 살 테니까. 많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1기든 2기든 3기든 그곳에 만족하며 살면 그만일 테다. 그런데도 이토록 두서없이 일개 직장인의 출근길을 중얼거린 이유는… 죽을 것 같아서 그런다. 이대로는 못 살 것 같아서 그런다. 확충된다는 교통 인프라는 소식이 없고, 신도시에는 여태 기반 시설도 부족한데 3기 신도시가 생긴다니. 길은 더 막히겠지. 3기 이후 4기, 5기 신도시가 생긴대도 모든 것은 서울에 있겠지. 우리는 서울, 서울, 서울로 가겠지. 70분 전철을 타거나 100분 운전을 하거나, 광역버스를 놓치면서. 이 모든 개발의 끝은 무엇일까? 확실한 건, 이러한 걱정과 불만의 까닭이 꼭 집값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효인 시인ㆍ문학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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