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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아이’에 발목 잡힌 코오롱…1,100억원 투입해 쫓던 꿈 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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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아이’에 발목 잡힌 코오롱…1,100억원 투입해 쫓던 꿈 물거품

입력
2019.05.29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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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첫 세포유전자치료제로 허가 받은 ‘인보사’는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평소 “넷째 아이”라며 애착을 보였던 그룹의 미래 기대주이자 성장동력이었다. 자녀 셋을 둔 이 전 회장이 막내 자식처럼 키우겠다던 인보사가 결국 그룹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인보사 국내 판매허가를 눈앞에 뒀던 2017년 4월 이 전 회장은 인보사의 생산 거점인 코오롱생명과학 충주공장을 찾았다. 양산을 앞둔 인보사의 오랜 여정을 기념한 행사에서 인보사의 의미를 밝히는 문구로 그는 ‘981103’을 적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인보사 사업 검토 보고서를 처음 받은 날짜(1998년 11월 3일)를 뜻하는 숫자였다.

이 전 회장에 따르면 당시 보고서 내용은 아주 부정적이었다. 행사장에서 이 전 회장은 “성공 가능성이 0.00001%로 희박하다는 내용에 정말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보편적 관점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룹의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내 인생의 3분의 1을 인보사에 투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할 만큼 이 전 회장은 인보사에 대한 애정을 자주 표현했다.

2017년 4월 5일 코오롱생명과학 충주공장을 찾은 이웅열(둘째줄 왼쪽 두 번째)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인보사 사업 보고서를 처음 받은 날짜를 뜻하는 숫자를 적은 칠판을 들고 있다. 코오롱 제공
2017년 4월 5일 코오롱생명과학 충주공장을 찾은 이웅열(둘째줄 왼쪽 두 번째)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인보사 사업 보고서를 처음 받은 날짜를 뜻하는 숫자를 적은 칠판을 들고 있다. 코오롱 제공
2017년 4월 5일 코오롱생명과학 충주공장을 찾은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인보사 사업 보고서를 처음 받은 날짜를 뜻하는 숫자가 적힌 칠판을 들고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코오롱 제공
2017년 4월 5일 코오롱생명과학 충주공장을 찾은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이 인보사 사업 보고서를 처음 받은 날짜를 뜻하는 숫자가 적힌 칠판을 들고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코오롱 제공

인보사는 구조가 독특하다. 원래 허가 내용대로라면 정상 연골세포와 유전정보를 바꾼 연골세포를 섞어 만든다. 기존 유전자치료제들이 동물세포나 환자 자신의 세포를 이용해 만들어진 데 비해 인보사는 손가락이 6개로 태어난 사람에게서 수술로 떼어낸 손가락의 연골세포를 채취해 사용했다. 유전자치료제는 일반 화학의약품보다 임상시험에서 환자를 관찰해야 하는 기간도 더 길다. 그래서 개발에 19년이나 걸렸고, 1,100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인보사는 개발 단계부터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인보사보다 앞서 허가 받은 유전자치료제들이 모두 특정 암이나 유전병, 희귀병 치료용인데 비해 인보사는 퇴행성관절염을 겨냥한 약이었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보사를 허가했을 당시 세계 퇴행성관절염 치료제 시장 규모는 약 60억달러에 달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국내 허가 이후 2년도 채 안돼 인보사 기술과 제품이 20여개국에 수출됐다. 이우석 코오롱생명과학 대표는 “인보사가 회사의 성공을 넘어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청신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청신호는 얼마 안 가 적신호로 바뀌었다. 주성분인 연골세포가 알고 보니 신장세포였다는 황당한 사실이 지난 3월 밝혀진 데 이어, 성분이 뒤바뀐 걸 고의로 숨기고 허가에 필요한 자료를 허위로 제출했다는 정황마저 28일 식약처 발표로 드러났다. 그룹 차원에서 투자한 성장동력이 ‘거짓 의약품’이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4개월여 전인 지난해 11월 돌연 퇴임을 선언한 이 전 회장에게도 곱지 않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작용 원리도 제조법도 새로운 만큼 가능한 모든 첨단기술을 동원해 검증하고, 또 검증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오롱생명과학이 인보사 후속으로 개발해오던 통증 치료제와 항암제 역시 인보사 허가 취소와 함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세계 최초 신약’이라는 꿈을 쫓던 코오롱은 이제 제약∙바이오기업의 생명인 신뢰를 잃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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