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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코오롱이 세포 변경 알고도 은폐” 인보사 허가까지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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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코오롱이 세포 변경 알고도 은폐” 인보사 허가까지 무슨 일이

입력
2019.05.28 18:54
수정
2019.05.28 21:3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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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취소ㆍ형사고발했지만 ‘감독 부실’ 식약처 책임론도 부각

인보사 사태 일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인보사 사태 일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한국 바이오헬스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열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코오롱생명과학의 세계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케이주(인보사)가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 취소와 제조사에 대한 형사고발이라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2017년 7월 ‘국내 최초 유전자치료제’라는 수식어와 함께 화제를 일으키며 허가를 받은 지 2년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식약처 조사 결과 인보사는 허가 당시부터 성분에 문제가 있었으나 제조사가 의도적으로 숨겼고, 정부는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판매 허가를 내준 것으로 밝혀졌다. 신약 개발로 바이오 강국을 만들겠다는 경제 논리에 눈이 먼 사이 국민의 안전 관리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이다.

강석연 식약처 바이오생약국장은 이날 충북 오송 식약처 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인보사 성분이 허가 당시 제출한 자료에 기재된 연골세포가 아닌 GP2-293 세포(신장세포)로 최종 확인됐다”면서 “또 코오롱생명과학이 인보사 허가를 위해 제출한 자료가 허위로 밝혀짐에 따라 품목허가를 취소하고 코오롱생명과학과 이우석 대표를 형사 고발키로 했다”고 밝혔다.

인보사 구성. 그래픽=김경진 기자
인보사 구성. 그래픽=김경진 기자

사람의 연골세포 성분이 들어간 1액과 2액으로 구성된 인보사는 관절염 통증을 줄여주는 효과로 700만원 안팎의 고가에도 지금까지 3,707명의 환자들이 투여 받았을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올해 3월 코오롱생명과학은 인보사 2액 성분이 애초 허가 받을 때 제시했던 연골세포가 아니라 태아의 신장에서 유래한 신장세포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밝혔고, 식약처는 제조ㆍ판매중지 처분을 내리고 두 달에 걸친 검증에 들어갔다. 식약처는 이 과정에서 제조사가 애초부터 성분이 다르다는 점을 알면서도 허가를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부와 국민을 속였다고 판단했다. 강 국장은 “코오롱생명과학은 허가 당시 2액을 연골세포로 판단했던 이유나 2액이 신장세포로 바뀐 경위에 대해서 과학적인 설명을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제조사 ‘세포 바뀜’ 고의 은폐했나

식약처는 그간 인보사 성분이 바뀌게 된 과정을 조사하면서 개발부터 허가, 시판 과정에서 이르기까지 성분이 다른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한 코오롱생명과학이 이를 고의로 은폐했는지 여부를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당초 식약처는 성분이 달라진 이유로 ‘단순 실수’ 쪽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코오롱생명과학과 인보사 관련 5,000억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던 일본 미쓰비시다나베제약에서 이를 취소하고 계약금 반환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지난 2017년 3월 성분이 바뀐 사실을 인보사 개발사인 코오롱티슈진이 통보 받았다는 내용을 밝히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식약처는 조사단을 꾸려 이달 19~26일 미국 현지실사를 벌인 결과, 국내에서 품목 허가가 난 바로 다음날인 2017년 7월13일 코오롱티슈진이 미국 임상용 제품의 위탁생산 업체로부터 인보사 2액이 신장세포로 확인됐다는 내용을 이메일로 코오롱생명과학에 보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코오롱생명과학 측은 지난 3월 처음으로 세포가 바뀐 사실을 공개하면서 지금까지 일관되게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계속 거짓말을 해 왔다는 것이다.

제조사 측이 처음부터 ‘엉터리 서류’로 식약처를 속인 정황도 드러났다. 코오롱생명과학은 2액이 1액과 같은 연골세포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했을 때, 1액과 2액의 단백질 발현 양상을 비교ㆍ분석했다면서 실제로는 ‘1액과 2액의 혼합액’과 2액을 비교한 결과를 제출했다. 또 허가 전 2액 세포에 삽입된 TGF-β1 유전자의 개수와 위치가 바뀐 사실을 알고도 식약처에 알리지 않았다. 유전자 치료제에서 세포에 삽입되는 유전자의 개수와 위치는 의약품의 품질과 일관성 유지를 위해 허가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되는 요소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이와 관련, “17년전 신약 개발에 나선 코오롱티슈진의 초기개발 단계의 자료들이 현재 기준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어 품목허가 제출 자료가 완벽하지 못했다”면서도 “조작 또는 은폐사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개발사인 코오롱티슈진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협의해 임상시험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식약처의 검증 부실도 도마에

코오롱생명과학의 책임과는 별개로 이를 믿고 허가를 내준 식약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검증 부실에 대한 비판에 식약처는 “전 세계적으로 허가 시스템은 서류검토에 의존하고 있다”면서 “별도로 자체 검증을 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식약처를 검찰에 고발했고 감사원의 특별감사도 촉구하고 있다. 인보사 심의 당시 “약효 등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던 1차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자문결과(2017년4월)가 세 달 만에 허가로 바뀌는 등 정부가 관련 산업육성을 위해 의도적인 ‘밀어주기’에 나섰던 정황이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는 그간 반도체를 잇는 차세대 미래산업으로 바이오헬스 분야를 지목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바 있다. 인보사 역시 정부가 바이오산업의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밀착상담으로 개발 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마중물 사업’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처장은 “화학적인 합성 약품이라면 서류검토만으로 허가를 내줘도 되겠지만, 유전자 치료제와 같은 생물학적 제재는 보다 면밀한 안전성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보사를 투여한 환자들의 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법무법인 오킴스는 인보사 주성분 변경 논란이 불거진 이후 코오롱생명과학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 참여할 환자들을 모집해왔다. 오킴스에 따르면 이날 244명이 원고로 참여해 치료비로 사용한 주사제 가격과 위자료 등 총 25억원을 청구하는 1차 손해배상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하고, 2차 소송에 참여할 원고도 모집하고 있다. 국내에서 인보사를 투여한 환자는 모두 3,707명에 달한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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