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후배 감독들이 본 봉준호 감독]
제작자로 협업 박찬욱 “영화에 영혼을 갈아넣는 사람”
함께 일할 뻔한 이준익 “스태프ㆍ배우들을 동지로 예우”
“봉 상병님이 이렇게 칸까지 휩쓸지는 몰랐네요.”
영화 ‘말아톤’(2005)과 ‘대립군’(2017) 등을 연출한 정윤철(48) 감독은 27일 한국일보와 통화하다 감회에 젖었다. 정 감독은 25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사상 처음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의 봉준호(50) 감독과 군대 선ㆍ후임병 사이다.
정 감독은 1991년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재학 중 단기사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자대 배치된 그를 부대 인사과의 봉준호 상병이 찾았다. 인사카드에서 전공을 보고선 정 감독에게 진로를 묻기 위해서였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데 유학을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국영화아카데미라는 곳이 있는데 영어만 잘하면 합격할 수 있습니다.” “아, 그런 곳이 있구나.” 감독 봉준호는 그렇게 시작됐다. 정 감독은 “아마 내 조언이 없었으면 유학 가서 봉 교수가 됐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막 입대한 후임병을 따로 찾아와 진로 상담을 한 걸 보면 봉 감독은 그때도 참 성실한 스타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로 데뷔한지 19년이지만 봉 감독의 영화 이력은 더 길다. 영화아카데미 재학시절 만든 단편영화 ‘백색인’과 ‘지리멸렬’(1994)로 두각을 나타내며 20대때 충무로에 진출했다. 봉 감독을 20대때부터 봐온 선ㆍ후배 영화감독들은 공통적으로 성실하고 진지하면서 유머러스한 점을 봉 감독의 강점으로 꼽는다.
이준익(59) 감독은 ‘지리멸렬’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후 봉 감독을 만나게 됐다. 이 감독이 당시 제작하고 박찬욱(56) 감독이 연출하기로 한 ‘아나키스트’의 시나리오 작업을 맡기기 위해서였다. ‘아나키스트’(2000)는 우여곡절을 거쳐 박 감독과 봉 감독 모두 손을 떼고 이무영(55) 감독의 시나리오에 유영식(52) 감독의 연출로 만들어지게 됐다. 운이 맞았다면 박찬욱 연출에 봉준호 시나리오의 영화를 관객들이 만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 감독은 봉 감독에 대한 첫 인상을 “건전한 청년’으로 기억한다. 이후 동료 영화인으로 만나면서 더 많이 알게 된 봉 감독의 장점으로 “정중함과 솔직함”을 꼽았다. “영화만 봐도 봉 감독이 어떤 성품인지 알 수 있다. 한 인물의 내면을 명확히 드러내는 방식이 본인과 비슷하다. 정중하면서 솔직하기는 매우 힘든데 두 가지를 겸비하고 있다.” 이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배우 송강호에게 무릎 꿇고 트로피를 바치는 동작을 한 봉 감독의 모습에서 “스태프와 배우 모두를 동지로 여기는 평소 의식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정윤철 감독은 봉 감독의 장점으로 “시각화”를 꼽았다. “카페 같은 곳에서 매일 시나리오를 써내는 성실함과 자기 생각 지키기”도 장점이라고 평가했다. “할리우드에서 유명 슈퍼히어로물 연출 의뢰가 들어왔는데, 시나리오를 아예 들춰보지도 않더라고요. 자기가 생각하는 영화가 아니면 아예 관심 자체가 없습니다.” 정 감독은 “봉 감독이 특정 장면을 먼저 떠올리며 영화화를 생각한다”며 “화가 출신 일본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를 연상케 하는데, 한국의 구로사와가 될 감독”이라고도 말했다.
제작자로서 ‘설국열차’(2013)를 봉 감독과 협업한 박찬욱 감독은 ‘백색인’을 보고 봉 감독을 처음 알게 됐다. “보편적인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면서도 독특한 자기만의 관점을 지닌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남들이 보지 않은 점을 표현하는데,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늘 자기 뼈를 깎아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고도 덧붙였다. “보고 있으면 안쓰러울 정도로 자기 영혼을 영화에 갈아 넣는 타입입니다. 큰 돈을 쓰는 사람으로서 책임을 누구보다 더 많이 느끼고, 돈 쓴 만큼의 가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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