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남중국해’ 지지 요구한 미국
미중 패권경쟁 선택 갈림길 선 한국
양자 택일 미루고 집단지성 결집해야
사드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달 초 중국을 방문한 문희상 국회의장은 중국 권력서열 3위 리잔수로부터 “사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취해달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는 행여 실수할까 봐 준비한 메모를 또박또박 읽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환경영향평가 실시로 사드 배치 확정을 내년으로 미뤄뒀지만 그 사이 진전이 없으면 한한령(限韓令) 해제는 요원하다.
사드는 미중 갈등의 부산물이다. 북한 미사일 요격보다는 미국의 대중 군사동향 감시 목적이 크다. 문제는 사드보다 파괴력이 큰 사안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최근 우리 정부에 ‘화웨이 보이콧’ 동참을 요구한 데 이어 ‘남중국해 분쟁’에서 지지를 요청했다. 거부하면 가뜩이나 아슬아슬한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고, 수용하면 사드 이상의 중국의 경제 보복이 기다린다.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다 해도 미중이 본격 패권경쟁에 돌입한 이상 언제든 불거질 일이다. 분명한 건 지금까지 외교ㆍ안보 환경과는 패러다임 자체가 달라진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격화된 미중 전략 경쟁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한 인물은 마이클 필즈버리 미국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센터장이다. 트럼프의 고문을 맡고 있는 그는 2015년 펴낸 ‘백년의 마라톤’에서 “마오쩌둥부터 덩샤오핑, 시진핑에 이르기까지 중국 지도부는 건국 100주년인 2049년 미국을 꺾고 글로벌리더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패권을 추구해 왔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대중국 포용정책이 기만당한 게 확인된 만큼 중국의 ‘천하주의’를 막기 위한 전방위 전략을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2017년 발표된 국가안보전략에서 ‘중국을 미국의 이익과 가치에 반하는 국가’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최근 미국 고위 관리가 “우리가 백인이 아닌 대단한 경쟁자를 가진 것은 처음”이라며 미중 갈등을 ‘문명 충돌’로 표현한 것은 미국의 정서를 대변한다.
물론 아직은 군사력ㆍ경제력 등의 ‘하드파워’와 문화 역량을 의미하는 ‘소프트파워’ 등 객관적 국력은 미국이 중국보다 월등하다. 국방비만 해도 미국은 800조원 규모로 ‘천조국(千兆國)’으로 불리지만 중국은 300조원으로 격차가 현격하다. 당장은 신종 패권국과 기존 패권국이 군사적 충돌로 파국을 맞는 ‘투기디데스 함정’이 연출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셈이다.
하지만 기술 패권은 다르다. 미중 전략 경쟁에서 ‘게임 체인저’는 기술혁신 전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4차산업 혁명에서 누가 선두에 서느냐가 미래 패권의 향방을 좌우한다. 중국은 인공지능(AI)과 로봇공학, 통신장비, 항공우주 등 10대 전략산업을 육성하는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며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국가기술관료주의로 무장된 중국은 사생활 보호라는 제약을 받는 미국에 비해 발전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우리다. 중국 대륙과 해양 연합이 대치하는 지정학적 구조는 한반도의 숙명과 같다. 미국 편에 설 것이냐, 중국 편에 설 것이냐는 우리에게 실존의 문제다. 안미경중(安美經中ㆍ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나 연미화중(聯美和中ㆍ미국과 연합, 중국과 화목) 등 그간 우리가 펴온 전략으로는 더는 버티기 어렵게 됐다. 사드 사태를 돌이켜보면 우리 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너무 쉽게 포기했다. 사드 배치를 유예하면서 그 사이 북핵 문제를 진전시키고, 한편으론 미국과 중국을 설득해 타협으로 이끄는 지혜를 발휘했어야 했다. 교훈을 얻자면 미중 대립 국면에서 당장은 양자택일의 관점을 지양하고 신중하게 상대의 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그동안 집단지성과 내부의 활발한 의견 교환으로 다양한 카드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내부 갈등이다. 자유한국당 의원이 현 정부에 타격을 주기 위해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유출하고, 한국당은 무턱대고 감싸는 식의 정략적 태도로는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익 앞에 정파적 이해에 매몰되는 것은 백해무익하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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