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아동극 극단 43년째 이끄는 프라베티 감독
“한 살짜리 아이들도 공연을 집중해서 봅니다. 본능적으로 재미있다고 느껴서죠. 재미에는 1등이 없습니다. 그냥 즐기는 것이지요.”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난 로베르토 프라베티(65)는 이탈리아에서 ‘이야기 할아버지’로 유명하다. 그는 1976년 이탈리아 볼로냐에 아동ㆍ청소년극 전문 극단인 ‘라 바라카 테스토니 라가찌’를 창립했다. 극단은 현재까지 245개에 달하는 연극을 만들었고, 전세계 40여국에서 1만2,900회 이상 공연했다. 43년째 예술감독으로 극단을 이끌고 있는 프라베티는 최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하는 ‘2019 문화예술교육 국제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프라베티는 연극을 좋아하는 의대생이었다. 취미 삼아 만든 극단에서 봉사 활동 삼아 아이들 위한 연극을 하다가 아동ㆍ청소년극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아이들은 무궁무진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어른들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공연을 본다”며 “저마다 하나의 우주 같은 아이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의사로 병을 고치기보다 아이들의 마음에 꿈을 심어 주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진로를 바꿨다.
프라베티는 작은 소품을 활용해 아이들과 교감하며 대화하는 이야기극을 주로 한다. 무언극, 뮤지컬을 할 때도 있다. 프라베티는 “아이들마다 호감을 보이는 극의 장르가 다른 것이 흥미롭다”며 “어른처럼 아이들도 취향의 편차가 있기 때문이며, 이를 존중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프라베티의 연극에는 화려한 무대 장치나 현란한 기교가 없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그의 연극에 몰입한다. 그는 “아이들은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해도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고, 무엇이든 흡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극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예술이자 얼굴을 맞대고 생생한 관계를 맺는 예술”이라면서 “아이들은 연극을 통해 인간적으로 관계를 맺고 대화하고 교감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프라베티는 한국 아이들에게 공연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언어 문제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아이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언어로 공연을 하는 게 좋다”면서 “영어 연극을 보여 주면 아이들은 즐기는 게 아니라 교육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프라베티는 한국 부모들에게 ‘연극과 아주 어린 사람들’이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시험하고, 또 다시 가르치고, 시험하는 주입식 학습법이 보편적”이라며 “한국처럼 부모가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아이들일수록 예술을 통해 삶의 여유를 누리게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위와 점수를 매기는 방식의 예술 교육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예술은 보고 듣고 즐기는 것이다. 최고를 가리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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