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8> ‘도나도나’ 돼지 분양 사건
※사기를 포함한 지능범죄는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더욱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일확천금의 미끼에 낚이는 순간,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 지능범죄 시리즈는 매주 화요일 그 덫을 피해가는 지혜까지 전해드립니다. 한국일보>
“황금알을 낳는 오리가 아냐. 요즘은 ‘황금돼지 한 마리’라니깐. 그게 훨씬 더 나아.”
이숙자(66ㆍ가명)씨는 2010년 서울 강남의 단골 찜질방 직원이던 박미선(66ㆍ가명)씨로부터 ‘대박’ 투자처가 있다는 은밀한 정보를 들었다. 시중은행 정리예금 금리가 3%대였던 시절이었는데 그보다 10배나 많은, 연간 48%의 수익률을 준다 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뭔가 했더니 부동산도, 주식도, 외환도, 금도 아닌 ‘살아 움직이는 돼지’라 했다.
박씨 설명은 이랬다. 보통 어미돼지는 한 번에 10마리씩 1년에 두 번 꼬박꼬박 새끼를 낳는데, 500만원으로 어미돼지 1마리를 사두기만 하면 양돈법인이 대신 돼지를 길러다 연간 20마리씩 낳은 돼지 새끼들을 팔아주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새끼돼지는 반 년 만에 110㎏이 돼야 출하할 수 있는데 돼지를 살 사람과 미리 선물매매계약을 맺어두기 때문에 어미돼지를 사들인 시점부터 다달이 수익금을 챙길 수 있다 했다. 쉽게 말해 돼지 밑에다 투자금을 묻어두면 다달이 수익을 챙겨주고 계약이 만료되는 14개월 뒤엔 원금도 돌려준다는 얘기였다.
시험 삼아 어미돼지 5마리(2,500만원)에 투자했더니 몇 달간 월 100만원이 들어왔다.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었던 궁금증과 의심은 계좌에 또박또박 찍혀 나오는 숫자에 떠밀려 사라졌다. 이씨는 강남 아파트 등 재산을 처분해 12억원을 투자했다.
◇황금알 오리 말고, 황금돼지 아십니까?
해가 바뀐 2011년. 직장인 오선재(41ㆍ가명)씨도 고교 동창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황금돼지 소식을 접했다. 동창생 김상현(41ㆍ가명)씨가 어미돼지를 위탁 사육해 선물로 거래된 새끼돼지 대금으로 수익금을 받는 구조에 대해 설명했다. 대규모 위탁사육이라 사료비를 절감해 수익을 남긴다 했다.
이미 동창들 사이에선 김씨 소개 덕분에 연 60%의 수익을 얻었고 원금까지 되돌려 받았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오씨 눈은 번쩍 뜨였다. 월급만 바라보는, 평범한 샐러리맨에서 벗어나는 길이 여기에 있는 듯했다. 양돈법인 사무실을 찾아 구체적 사업 설명을 들은 오씨는 상속받은 농지 등을 정리한 돈 2억4,000만원을 투자했다.
다만 수익률은 그 전해 48%에서 24%로 줄어 들었다. 2009년 60%에 달했던 수익률은 2010년 48%, 2011년 24%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미돼지 가격도 시세에 맞춰 600만원으로 100만원이 올랐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초기의 모험적 투자자들이 고수익을 맛봤고, 그 이후 사업이 안정적인 단계로 접어들면서 수익이 점차 합리적 수준으로 수렴해 들어간다고 이해했다. 무엇보다 점차 줄어들었다곤 하지만, 여전히 고수익이긴 매한가지였다. 더 지체하다간 이 수익률마저 더 하락할 지모른다. 황금돼지 재테크 열풍은 그렇게 힘을 얻어나갔다.
◇‘도나도나’라는 양돈업계의 새바람
이렇게 투자자를 끌어모은 양돈법인은 주식회사 ‘도나도나’다. 도나도나는 홍보에도 열심이었다. 도축에서 가공ㆍ유통을 거쳐 판매까지 수직계열화를 통해 생산단가를 낮춘, 주목받는 양돈 기업이었다. ‘국내 최초 양돈위탁시스템 도입’ ‘제주 프리미엄 흑돼지 브랜드 출시’ ‘프랜차이즈 사업 추진’ 등으로 양돈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이슈 몰이’를 했다. 최덕수(72) 대표는 ‘자유무역협정(FTA) 극복을 위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구호로 내세우더니 공격적 사업 계획을 강조했다. 투자자들이 도나도나와 최 대표에 대해 궁금해하면 도나도나 측은 “국내 최대 닭고기 전문업체 ‘하림’이 병아리 10마리를 키운 것에서 시작한 것처럼 양돈업계의 ‘하림’이 되는 게 최 대표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도나도나의 가장 큰 장점은 ‘돼지’라는 실물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점이었다. 2011년 4월엔 경기 광주에서 어미돼지 850여마리를 한꺼번에 농장에 들이는 ‘입식 행사’를 열었다. 커다란 돼지들이 한번에 축사로 몰려들어가는 장면은 마치 내 주머니에 돈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사업설명회도 농장, 도축장, 직영 식당 등에서 열었다. 이씨는 “흔히 ‘돼지우리’라고들 하지만, 도나도나가 데려간 곳은 시설이 깔끔하고 내가 투자한 어미 돼지에는 내 이름이 적힌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투자자 명단이 적힌 현황판이 설치된 곳도 있었다. 하다못해 뭔가 잘못된다 해도 이 농장과 돼지는 내게 남겠지, 투자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도나도나에 대한 검찰 수사가 가시화된 건 2013년이다. 서울중앙지검 서민침해사범 합동수사부는 2013년 11월 최 대표 등 도나도나 관계자 13명을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다고 발표했다. 법은 불특정 다수에게서 출자금 전액 또는 이를 넘어서는 돈을 지급할 것처럼 약속하고 출자금을 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2009년 4월부터 연 24~60%의 확정 수익금과 원금을 보장해 1만여명으로부터 2,429억원을 투자받은 게 위법하다 봤다.
사건이 보도되자 투자자들은 들끓었지만, 도나도나 측은 설명회를 열어 안심시켰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건 맞지만 혐의점이 없어 그냥 끝날 것 같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이때부터 매달 들어오던 수익금이 끊겼다.
◇ 법원도 도나도나 무죄 판결로 면죄부
하지만 투자자들은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법원이 1ㆍ2심에서 최 대표 등에게 적용된 유사수신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1심은 도나도나 사업모델의 토대가 양돈업이라 인정했다. 돼지라는 실물상품이 있으니, 금융기법을 쓴 일반적인 유사수신행위와 다르다고 판단한 것이다. 투자자에 비해 위탁 돼지 수가 적다는 부분도 당시 유행한 구제역 등으로 인한 일시적 상황으로 간주했다. 도나도나의 연간 순이익이 증가세였다는 점도 참작 사유였다. 결국 최 대표 등은 업무상 횡령, 위조사문서행사 등의 혐의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항소심에서도 유사수신행위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유지됐다.
양돈업계는 법원의 이런 판결이 양돈업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본다.
일부 양돈농가들은 돼지를 맡겨 기른다. 양돈농가는 일반적으로 어미돼지를 키워 새끼돼지를 생산하는 ‘모돈농가’와 새끼돼지를 출하할 수 있는 단계까지 살찌우는 ‘비육농가’로 구분된다. 모돈농가는 태어난 새끼돼지가 30㎏이 될 때까지 키워 비육농가에 넘긴다. 사료비 등 비용은 모돈농가가 다 부담하되 비육농가는 새끼 1마리당 3만~5만원의 위탁 비용을 받는다. 이렇게 키운 돼지가 시장에서 판매되면 그 수익은 모돈농가가 가져간다.
이는 시설 비용을 줄이고 전문화하기 위한 일종의 분업 구조다. 언뜻 보면 ‘돼지 소유자’와 ‘돼지 사육자’가 분리된 이 시스템을 도나도나가 고스란히 따라 한 것 같지만, 새끼돼지를 출하하기도 전에 선물매매해 수익을 낸다거나, 1년에 무조건 20마리의 새끼돼지가 태어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 등은 양돈업의 속성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얘기다. 키우는 과정에서 돼지가 죽는 경우도 많고, 구제역 같은 질병이 일어나는 등 변수도 다양하다. 고수익ㆍ원금보장을 함부로 얘기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얘기다.
대한한돈협회 관계자는 “새끼돼지를 연간 ‘30마리’씩 생산해내던 모범농가도 질병이 발생하면 ‘0마리’로 성적이 떨어진다”며 “양돈업은 단순한 숫자놀이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 축산업계 관계자는 “닭고기를 생산하는 육계농가의 경우에도 닭 소유주의 90% 이상이 닭 사육을 농가에 위탁하고 있다”며 “이 경우에도 닭이 죽을 경우 손실은 원래 소유주가 부담하는 방식을 쓴다”고 말했다.
◇홍만표ㆍ우병우 변호사비는 피해자들 돈
돼지 1마리가 1년에 20마리씩 낳는다는 법칙은 실제와 다를 수밖에 없다. 도나도나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양돈업계에선 어미돼지 한 마리가 새끼돼지를 생산해 출하체중(약 110㎏)까지 자라는 개체 수 비율을 ‘MSY’라고 부르는데, 대한한돈협회에 따르면 국내 양돈농가들의 평균적인 MSY는 17, 18마리 사이다. 어미돼지가 연간 2.2회를 임신해 회당 10마리의 새끼돼지를 낳는 것은 맞지만, 출하 전까지 10~20% 정도가 폐사하기 때문이다. 도나도나는 ‘MSY = 20마리’를 지킬 수 있다 주장한 셈이지만, 실제 도나도나 농장들의 평균 MSY는 10마리 정도에 불과했다.
이래선 유지가 안 되니 도나도나는 편법을 썼다. 2012년 4월부터 별도로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에다 돼지 소유권을 이전한 뒤 이를 담보로 660억원을 대출받았다. 이 과정에서도 돼지 마릿수를 부풀리거나 서류상 출하 규모와 대금을 뻥튀기하는 수법을 썼다. 양돈업계에선 이게 원래 목적 아니었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운영하다 보니 부족한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SPC를 세운 게 아니라, SPC를 세워 돈을 받아내기 위해 위탁양돈 시스템을 악용한 게 아니냐는 얘기다.
도나도나 사건이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된 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이 사건 변호를 맡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굵직한 사건 처리 경험이 많은 검찰 특수수사 전문가였다는 점에서 1ㆍ2심 무죄는 ‘슈퍼 전관의 힘’이었다는 뒷말이 돌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6년 9월 도나도나에 대해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되돌려 보냈다. 이후 서울고법은 2017년 8월 유사수신행위규제법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면서 최 대표에게 징역 9년 등의 중형을 선고했다.
◇울분에 찬 피해자들 다시 사기로 고소
사건이 몇 년에 걸쳐 계속되는 동안 투자자들은 금전 피해 이상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투자자 모집책으로 활동했던 친구, 동창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게 가장 뼈 아팠다. 거기다 전관 논란으로 법조계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특히 ‘힘의 불균형’은 뼈에 사무치게 아팠다. 투자금 2억4,000만원 중 2억원 이상을 돌려받지 못한 오씨는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받은 투자금으로 천문학적인 변호사 비용을 들여 전관을 사서 소송에 대응하는데 피해자들은 법률지식이 모자라 전전긍긍하다시피 했다”면서 “투자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더라도 도나도나 사람들에 대해 제대로 처벌을 하거나, 피해자들로부터 이익 본 돈을 전액 몰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최 대표 등을 사기로 다시 고소했다. 그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가 다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검찰은 2017년 3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최씨 등을 다시 기소해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유죄 판결이 나오면 기존 확정 판결된 형기에다 형량을 추가로 더 얹을 수 있다. 재판부에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10번 이상 제출했다는 피해자 윤건형(70ㆍ가명)씨는 “이번에는 대한민국 법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길 바란다”고 힘줘 말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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