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지검장이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ㆍ경 수사권조정 법안을 가리켜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며 “중립성과 공정성 시비 등에서 시작된 개혁논의가 방향성을 잃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송인택(56ㆍ사법연수원 21기) 울산지검장은 26일 오후 8시 국회의원 전원에게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의 대표에게 드리는 검찰개혁 건의문’이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문서파일로 첨부된 건의문은 A4 14장 분량의 장문이다.
송 지검장은 메일 앞부분에서 “검찰개혁 요구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수사,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수사, 제 식구 감싸기 수사 등에서 비롯됐고, 그 책임이 검사에게 많다는 점에서 부끄러울 때가 많다”면서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시비가 공안, 특수, 형사, 공판 중 어느 분야에서 생겼는지, 의혹과 불신을 초래한 사건처리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수사를 초래하는 공안과 특수 분야 보고체계와 의사결정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정치 권력 마음에 들지 않는 수사를 하면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작금의 개혁안들이 마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인 것처럼 추진되는 것을 지켜보자니 또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고 메일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송 지검장은 현재 수사권 제도 자체도 순기능이 많으며, 무턱대고 수사권을 경찰에게 이관하면 도리어 위험이 따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논의되는 검찰개혁안들은 국민에게 불편ㆍ불안을 가중하고, 비용은 늘어나게 한다”며 “수사기관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제도의 잘못으로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는지 검토해야 하고, 그런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개혁안은 재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현재 검찰 권력이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법무부 장관, 청와대에 집중돼 있는 구조에 대해서도 정면 비판했다. 송 지검장은 “민정수석은 권력 핵심이고, 법무부 장관은 정권에 의해 발탁되고 정권에 충성해야만 자리를 보전하는 자리”라면서 “총장 임면(任免)이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라면 태생적으로 코드에 맞는 분이나 정권에 빚을 진 사람이 총장이 되고, 결국 총장은 임명권자 이해와 충돌되는 사건을 지휘할 때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지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메일 말미에는 검찰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시하기도 했다. 현직 검사가 아닌 사람 중에서 능력과 인품을 검증하고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 총장을 임면하도록 절차를 개선하고, 수사 착수부터 기소까지 총장이나 대검 참모의 사전 지휘를 받게 하는 총장의 제왕적 지휘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 밖에도 △법무부나 청와대에 수사 정보를 사전에 알리는 현행 보고 시스템 개선 △검찰 스스로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검사장들이나 평검사 대표들이 상설특검 회부를 요구하는 장치 마련 △부당ㆍ인권침해 수사를 한 검사를 문책하는 제도 도입 △청와대ㆍ국회 등 권력기관에 검사를 파견할 수 없도록 제도 개선 △공안 기획이나 특수 분야 출신 검사장 비율 제한 △검찰 불신을 야기해 온 정치적 사건과 하명 사건 수사는 경찰이 주도하도록 변경 △대통령이나 정치 권력이 검사 인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도록 독립적인 위원회가 실질적인 인사를 하도록 제도 개선하는 등을 검찰 개혁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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