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문을 두드린 지 19년만이다.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자축하는 최고의 선물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제72회 칸 국제영화제(이하 칸) 최고의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면서 수상의 의미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19년 10월 27일 ‘의리적 구토’가 서울 종로구 단성사에서 개봉된 지 정확히 100년째인 올해, 한국영화가 세계 최고의 영화 축제인 칸에서 처음으로 가장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았다는 건 시점상 무척 절묘하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심사위원단이 한국 영화계를 위해 일부러 준비한 100세 기념 ‘깜짝 선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이 지난 2000년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받고 나서, 무려 16번의 도전 끝에 황금종려상 수상의 기쁨을 누리게 된 것도 아주 이채롭다.
앞서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와 ‘박쥐’로 2004년 심사위원 대상과 2009년 심사위원 상을 받고, 전도연과 이창동 감독이 ‘밀양’과 ‘시’로 2007년 여우주연상과 2010년 각본상을 챙기면서 수상에 대한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그러나 이 같은 수상이 이어질수록 아쉬움과 불안감도 함께 커졌던 게 사실. 오랫동안 한국 작가영화를 대표해 오던 홍상수 감독과 김기덕 감독이 복잡한 사생활과 불미스러운 일로 눈에 띄는 하락세를 그리기 시작하고, 지난해 장편 경쟁 부문에 초대받았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호평에도 빈손에 그치면서부터다.
이들 모두 박찬욱·봉준호 감독과 더불어 칸이 꾸준히 아끼고 관리해 온 몇 안되는 한국 영화감독들로, 이제는 ‘젊은 피’의 수혈이 시급해졌다는 지적까지 조금씩 불거지고 있는 와중에 갓 50대가 된 봉준호 감독의 이번 수상은 한국 작가영화의 ‘해외 영화제 위기론’을 불식시키는 징표로도 읽힌다.
한국 영화계와 팬들이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얻게 될 가장 큰 선물은 뭐니뭐니해도 지독한 ‘수상 강박증’에서의 탈출일 것이다.
최근 들어 다소 덜해졌으나, 해외 유수의 영화제 소식을 전할 때와 접할 때 우리의 모든 관심은 수상 여부에만 집중되기 일쑤였다. 영화제는 스포츠 경기가 아님에도 순위 경쟁에만 매달리곤 했다. 아시아의 영화 강국이면서도, 일본 중국 이란 태국이 차례로 이미 품었던 황금종려상을 우리만 계속 못 가져오는 게 아닌가 싶어 내심 초조했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편안한 자세로 영화제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립박수가 몇 분간 이어졌는지 혹은 해외 매체들이 별을 몇 개나 줬는지, 그래서 한국영화가 상을 받을 지 안 받을 지에 더 이상 연연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보다는 지난해 ‘버닝’의 수상 불발 직후 이미 제안했던 것처럼 봉준호 감독 등의 뒤를 이을 차세대 영화작가들의 발굴과 육성에 힘쓰고, 다양한 성격의 한국영화들이 많이 제작될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게 우선이다.
바깥에서 보여지는 ‘체격’은 이만하면 근사해졌다. 문제는 ‘체력’이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체격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한국 영화계와 관객들 모두 ‘외화내빈’을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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