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연출력으로 ‘봉테일’... 한국 사회와 신자본주의 비판 담아
시작부터 남달랐다. 단편영화로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고, 8년 동안 한국 영화 최고 흥행작 타이틀을 지켰다. 한국 영화계에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처음 안긴 봉준호(50) 감독의 연출 이력은 유난히 돋보였다.
봉 감독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영화아카데미에서 1년 동안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대학 시절 학보 연세춘추에 시사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 단편영화를 만들 때부터 충무로에서 유명 인사였다. ‘백색인’(1993)과 ‘지리멸렬’(1994)은 영화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화제였다. 영화 ‘괴물’(2006)로 봉 감독과 1,300만 관객 동원을 합작해낸 영화제작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가 ‘백색인’을 보고 봉 감독을 일찌감치 점 찍어 놓았을 정도다.
봉 감독의 영화는 장르의 특징을 가져오면서 자기 식으로 변주한다. “봉 감독 영화가 바로 장르”라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웃음기와 냉기가 공존하는 스크린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부조리, 신자본주의 사회의 아이러니와 비극을 담았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도 구성원이 모두 백수인 한 가족과 IT로 부를 일군 또 다른 가족의 사연을 지렛대 삼아 자본주의 사회의 어둠을 들춰낸다. 봉 감독은 재미와 의미를 두루 갖춘 영화들을 만들어 한국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섬세한 연출력 때문에 팬들은 그를 ‘봉테일’(봉준호와 디테일의 합성어)이라 부른다.
장편 영화 데뷔가 빠른 편이다. 31세였던 2000년 블랙코미디 ‘플란다스의 개’로 입봉했다. 사라진 개를 둘러싼 일대 소동극을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들췄다. 봉 감독은 흥행에 자신만만했으나 박스오피스 성적은 초라했다. 관객의 기호를 이때 절실히 깨달았다고 봉 감독은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술회했다.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단번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한국 영화 기대주가 됐다. 1980년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독재 사회의 일그러진 면모를 그려냈다. 500만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했고, 평단의 지지까지 이끌어냈다.
봉 감독은 ‘괴물’로 1,300만 관객을 모으며 ‘국민 감독’의 자리에 올랐다. ‘괴물’은 2014년 ‘명량’(1,700만명)에 의해 밀려나기 전까지 역대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8년 동안 지켰다. ‘괴물’은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대돼 봉 감독의 해외 진출 발판 역할도 했다. 봉 감독은 세계 유명 감독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도쿄!’(2008)에 이어 ‘마더’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잇달아 초대 받으며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발돋움했다. 봉 감독은 2011년 칸영화제가 신진 감독들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황금카메라상 심사위원장을 맡아 세계 영화계에 입지를 다졌다.
‘설국열차’(2013)는 봉 감독의 연출력과 국제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기획됐다. 국내 영화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가 주도로 만들어졌으나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한 크리스 에번스, 영국 유명 배우 틸다 스윈튼과 제이미 벨 등이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 2017년엔 세계 1위 온라인 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 제작 영화 ‘옥자’를 연출해 논란의 한가운데 서기도 했다. ‘옥자’는 같은 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으나 프랑스 극장업계의 강한 반발을 샀다. 넷플릭스는 온ㆍ오프라인 동시 공개 전략으로 당시 세계 극장업계와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었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페인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을 영화는 상을 받을 수 없다고 영화제 초반 공언해 ‘옥자’는 일찌감치 수상권에서 멀어졌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이번에 ‘페인 앤 글로리’로 칸영화제에서 ‘기생충’과 경쟁했다. 봉 감독은 의도치 않게 2년 전 빚을 갚은 셈이 됐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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