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과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을 연주하고 있다. 크레디아 제공

지난 7일 9년 만에 한국을 찾아 여전히 ‘활화산’처럼 건재함을 보여 준 피아노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78). 자신의 이름을 딴 ‘벳부 아르헤리치 뮤직 페스티벌’을 앞두고 서울 무대에도 올랐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피아니스트 임동혁(35)과의 듀엣 연주였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 연주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온 아르헤리치가 임동혁에게 건넨 첫 마디는 이랬다. “우리 함부르크 때보다 더 좋지 않았어?”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아르헤리치 페스티벌에서도 같은 곡을 연주했다. 이전까지 함부르크에서의 연주를 ‘최고’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한국에서의 연주가 더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였다.

임동혁과 아르헤리치의 연주는 앨범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피아노 협주곡을 처음으로 담은 임동혁의 앨범엔 아르헤리치와의 협연도 들어 있다. BBC 심포니와 영국 런던에서 녹음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아르헤리치와 독일 베를린에서 녹음한 ‘교향적 무곡’이 담겼다. 음반은 9월 워너클래식 레이블로 전세계에 발매될 예정이지만, 한국에서는 아르헤리치와의 협연을 기념하는 뜻을 담에 5월에 나왔다.

24일 서울 송파구 워너뮤직 코리아에서 마주한 임동혁은 “무대에 들어서자마자 환호해 준 관객들 덕분에 포근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놓고 연주할 수 있었다”며 “녹음은 실황 보다는 긴박감이 적어 실제 연주보다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임동혁과 아르헤리치의 인연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동혁이 참가한 부조니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아르헤리치는 EMI(현재 워너클래식) 음반사에 임동혁을 추천해 데뷔 음반을 낼 기회를 마련해 줬다. 당시 낸 음반으로 임동혁은 2001년 프랑스 황금디아파종상을 받았다. 임동혁은 아르헤리치를 “사려 깊고 따뜻한 분”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분들이 무서운 분이라고 오해하지만, 반대예요. 아무 관련이 없는 연주자와의 협연도 기꺼이 해주실 때가 많고요. 제가 이 얘기를 마르타 선생님에게 했더니 ‘너에겐 그러겠지’라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지난 7일 연주가 끝난 뒤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임동혁의 손을 잡고 무대 한 바퀴를 돌며 관객에게 인사했다. 크레디아 제공

20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나이를 뛰어 넘은 우정을 쌓아 왔다. 이번 협주곡 앨범을 준비하면서 임동혁이 아르헤리치에게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연을 제의하자 아르헤리치는 흔쾌히 이 수락했다고 한다. 아르헤리치는 임동혁을 ‘리미첸코’라는 애칭으로 부른다고 한다. 임동혁의 영문 성인 ‘Lim’에 러시아식 이름의 어미인 ‘첸코’를 붙인 것이다. 아르헤리치는 “내 생애 최고의 ‘교향적 무곡’ 연주는 리미첸코와 함께 한 것”이라며 임동혁에게 아낌 없는 찬사를 보냈다. 지난 7일 한국에서 연주를 끝낸 뒤 아르헤리치는 임동혁의 손을 잡고 무대를 한 바퀴 돌면서 청중에게 인사했다. 임동혁은 아르헤리치의 이 퍼포먼스가 다니엘 바렌보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소개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크레디아 제공

1994년 러시아로 이주해 피아노를 배운 임동혁에게 라흐마니노프는 “이질감이 전혀 없는 편한 작곡가”다. “어릴 때 가장 많이 듣고 보고 자란 곡이죠. 독일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할 때는 좀 더 절제를 하거나 컨트롤이 필요하고, 머리를 1%라도 더 써야 하는데, 라흐마니노프는 그렇지 않거든요.” 낭만적인 선율이 돋보이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은 수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했고 음반으로도 남겼지만, 임동혁의 라흐마니노프에는 자연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그는 “무리한 해석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톡 쏘는 게 없네, 개성이 없네, 밋밋하네 하는 말씀을 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라흐마니노프의 곡에서 감성과 감정을 더 강하게 넣으면 촌스러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개성을 위한 개성을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임동혁은 자신에게 엄격한 연주자다. 그는 “자기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언제나 많이 부족하지만 잘 하고 있어 라고 생각하죠. 아무래도 음악가로 살다 보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걸 달래줄 수 있는 것도 스스로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을 묻자 잠시 고민하던 그가 대답했다. “저의 음악제가 있으면 좋겠어요. 친한 사람들과 모여서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해장까지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제가 놀고 싶다고 얘기하는 거죠(웃음)?”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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