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3월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무함마드 빈살만(왼쪽)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 회동 중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한 무기 차트를 보여주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의회를 우회해 중동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에 무기를 수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앞서 미 의회가 ‘예멘 내전 개입’을 문제 삼으며 두 나라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를 가로막자, ‘이란과의 긴장 고조’를 핑계로 내세워 의회 승인 절차를 건너뛸 수 있도록 한 ‘긴급 조항’의 발동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무기 판매 금지에 초당적 합의를 이뤘던 공화당과 민주당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AP통신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등 고위 관리들이 정밀유도무기와 전투기가 포함된 70억달러(약 8조3,174억원) 상당의 무기를 사우디 등에 팔기 위해 ‘무기수출통제법’의 긴급 조항 발동을 추진 중이라고 전했다. 본래 미 의회는 행정부의 무기 수출을 검토해 수정하거나 금지할 권한이 있지만, 대통령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해 시급한 상황이라고 판단할 경우 의회 심사 과정을 생략할 수도 있다.

‘의회 패싱’ 추진 소식에 여야 모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의 공화당 마코 루비오 의원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면서 “사우디를 위해 원칙을 위반한다면 앞으로 다른 곳에서 같은 일이 발생하도록 문을 여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민주당의 크리스토퍼 머피 상원의원도 전날 트위터를 통해 “예멘 투하용 폭탄을 사우디에 판매할 긴급한 이유는 없다”면서 “만일 (의회를 우회할 만한) ‘비상사태’가 있다면, 이는 우리가 사우디에 폭탄을 판매해 발생한 ‘인도주의적 비상’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동안 사우디와 UAE는 “예멘 내전에 개입, 인도주의적 위기와 정정불안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유엔은 이들이 주도하는 군사동맹 공습으로 예멘 민간인 수천명이 숨졌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지난해 10월 사우디의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자국 요원들에 의해 암살되는 일까지 벌어지자, 미 의회는 사우디에 대한 20억달러 규모의 무기 판매를 1년 넘게 막아오고 있다.

AP통신은 폼페이오 장관이 이미 수개월 전부터 긴급 조항 발동 여부를 고심해 왔으며, 최근 △이란의 위협 고조 △예멘 후티 반군의 사우디 석유 시설 드론 공격 등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미 정부 측이 ‘상황이 더 긴박해졌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 랜드연구소의 중동 분석가 달리아 다사 케이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이 시점에서 (사우디ㆍUAE에 대한) 무기 판매 추진은 의회와는 물론, 이란과의 긴장도 고조시킬 것이며, 예멘 평화를 위한 노력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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