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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향해 함께 발 구르자… 분단 최전선에 ‘3인용’ 그네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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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향해 함께 발 구르자… 분단 최전선에 ‘3인용’ 그네 생겨

입력
2019.07.20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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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그룹 수퍼플렉스의 야콥 펭거(가운데)가 지난 5월 21일 경기 파주시 도라전망대에 설치한 그네 작품을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왼쪽),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함께 타고 있다. 신지후 기자
예술가그룹 수퍼플렉스의 야콥 펭거(가운데)가 지난 5월 21일 경기 파주시 도라전망대에 설치한 그네 작품을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왼쪽),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함께 타고 있다. 신지후 기자

도라전망대는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DMZ) 해발 167m 언덕에 위치해 있다. 민통선 안쪽이라 사람이 드물어 한없이 고요한 곳이다. 전망대를 올라서면 느껴지는 긴장감이 만만찮다. 판문점은 물론 개성공단, 개성 시가지가 한 눈에 보일 만큼 북한과 가깝다. 서부전선 군사분계선 최북단에 놓인 전망대에서 개성까지 거리는 12㎞ 정도다.

이런 전망대 앞마당에 얼마 전 커다란 그네가 설치됐다. 5.5m 높이로 뻗은 주황색, 하늘색 구조물이 그네 두 대를 받치고 있는 형태다. 어쩐지 일반 그네와는 달리 보이는데, 실제 그렇다.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올라 타 발을 굴리고 속도를 맞춰야 한다. 왜 이곳에, 하필 3인용 그네가 설치 된 걸까.

그네는 덴마크 예술가 그룹 수퍼플렉스의 설치작품이다. 작품명은 ‘하나 둘 셋 스윙!’으로, 영국과 덴마크, 독일, 스위스를 거쳐 이곳 도라전망대에 다섯번째로 자리를 잡았다. 작품 공개를 계기로 최근 전망대를 찾은 수퍼플렉스의 야콥 펭거는 “앞선 국가들에 설치됐던 그네의 기둥이 땅을 파고 들어가 이곳 도라전망대에 솟은 형태로 보면 된다”며 “도라전망대에 작품을 놓겠다는 꿈이 이뤄져 기적 같다”고 말했다. 현재는 전망대 1층 내부 전시 때문에 그네를 타도 북한이 도드라지게 보이진 않지만, 일부 감상은 할 수 있다.

수퍼플렉스는 관람객의 행동을 적극 끌어내는 오브제이기에 ‘그네’를 작품에 끌어들였다. 하나 혹은 둘이 아닌 셋이 모일 때 진정한 ‘집단’이 갖춰지고 협력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로 3인용 그네를 만들었다. 실제 전망대에 오르는 내ㆍ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견학 중인 군인들은 셋씩 자연스럽게 모여 그네에 올라타 발을 구른다. 세 명이 협력해야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일반 그네보다 작동이 쉽지는 않지만, 온전히 균형을 찾고 나면 기쁨도 훨씬 크다는 게 체험자들의 이야기다. 펭거는 “그네 타기라는 순수하고 일상적 행위를 통해 관람객 스스로가 협업의 에너지를 느꼈으면 한다”고 했다. 세명의 협력과 균형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작품의 작동 원리가 최근 남과 북, 그리고 미국 3국에 주는 메시지도 적잖다.

지난 5월21일 경기 파주시 도라전망대에 견학 온 군인들이 수퍼플렉스의 '하나 둘 셋 스윙!'을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
지난 5월21일 경기 파주시 도라전망대에 견학 온 군인들이 수퍼플렉스의 '하나 둘 셋 스윙!'을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신지후 기자

수퍼플렉스는 그간 북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왔다. 2013년에는 재미큐레이터인 주은지씨와 함께 방북해 ‘바이오 가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평양 등 여러 시내를 돌면서 주민들에게 버려진 유기물을 활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는 내용이다. “캄보디아 등지에서는 바이오 가스를 만드는 기구의 시제품을 만들어서 전시도 하고 실제 테스트도 해봤죠. 북한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정보를 주는 정도까지만 진행할 수 밖에 없었고요. 이번 작품은 꼭 북한으로 옮겨갈 수 있길 바라요. 허황된 꿈 같지만, 충분히 바라 볼 법한 일 아닌가요?” 펭거는 당시 프로젝트와 앞으로 목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초 작품은 크기가 커 운송에 많은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설치되지 못할 뻔 했다. 올해로 수교 60주년을 맞는 덴마크의 주한대사관과 뉴 칼스버그 재단, 문화재청이 적극 후원해 프로젝트가 성립됐다. 작품 설치 기간은 2년(2021년 5월20일까지)으로 길다. 전망대를 찾는 누구든 그네를 타볼 수 있다. 물론 셋이 모여야 더 쉽고 즐겁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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