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명의 이슬람 문명 이야기] <16> 다원주의 추구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주의 
 ※이슬람 국가 모로코에서 이슬람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정명 명지대 교수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서 들려드립니다. 
흔히 이슬람은 타종교에 배타적인 종교로 알려져 있지만, 이슬람에도 타종교와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자들이 있다. 사진은 대구이슬람사원에 모인 무슬림들이 지난달 스리랑카에서 발생한 부활절 연쇄 폭탄테러로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며 기도를 올리는 모습. 대구=뉴스1

지난 4월 21일 스리랑카에서 그리스도교 교회를 표적으로 삼은 연쇄 폭탄 테러로 300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3월 뉴질랜드에서 발생한 테러로 무슬림 50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이슬람국가(IS)가 기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대형 참사가 터질 때 마다 많은 사람들은 “과연 이슬람은 타 종교와 공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이슬람 역시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타 종교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배타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타 종교와 평화적 공존을 추구하는 다원주의자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슬람 신비주의로 알려진 수피주의는 모든 종교가 하나의 근원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상을 설파하면서 다원주의 이론을 정립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피주의, “경전에 언급된 신은 초월적 존재의 무한한 모습 중 일부” 

특정한 종교를 믿는 신도가 다른 종교 집단에 대해 갖는 태도는 크게 배타주의와 다원주의로 나뉜다. 배타주의는 문자 그대로 자기 종교나 신학을 통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며 타 종교의 진리나 구원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다원주의는 배타주의의 오만한 자세를 비판하며, 자기 종교의 진리 독점권을 대담하게 포기하는 입장을 취한다. 다원주의에 따르면, 모든 종교는 자기 방식대로 다양하게 신을 인식하고 구원을 경험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느 종교도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현대의 대표적 다원주의 사상가인 영국의 존 힉은 다원주의적 사유 방식이 그리스도교, 이슬람, 힌두교, 불교, 유대교 등을 막론하고 과거부터 세계의 모든 종교에서 발전해 왔는데, 이슬람의 경우 바로 수피주의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언급했다.

이슬람 신비주의로 알려진 수피주의(Sufism)는 양털로 짠 의복을 가리키는 아랍어 단어 ‘수프(Suf)’에서 파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슬람 초기 일부 무슬림 수도승들은 이기심과 세속적 쾌락을 단념하고 사막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양털로 짠 옷을 입고 수행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걸쳤던 금욕과 청빈의 상징 양털 옷은 수피주의라는 용어로 발전했다.

수피주의자들은 신, 인간,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서 이슬람의 양대 종파인 수니파나 시아파 추종자들과 커다란 차이를 보였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기본적으로 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인 칼리파를 누가 차지하느냐는 정치적 문제를 놓고 교리 논쟁을 벌였다. 이에 반해 수피주의자들은 세속 정치보다 인간 내면의 문제에 보다 많은 관심을 두었다. 그들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심지어 무생물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삼라만상은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유출되어 생성된 결과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초월적 존재로부터 기원한 영적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고 보았고, 수행을 통해 그것을 깨우치는 것이 쿠란의 말씀이나 샤리아(율법)를 맹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마울라위야 수피 종단 수도승이 회전 춤을 추는 모습

하지만 수피주의자들은 초월적 존재란 이성으로써 이해할 수 없으며 심지어 이름조차 알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초월적 존재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도 거대하고 변화무쌍하여 언어라는 그릇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보기에, 수많은 종교의 경전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신은 초월적 존재의 무한한 모습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수피주의자들은 금욕을 지키며 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암송하는 ‘디크르’라는 의식을 행하면 마음이 정화되고 세속적 번뇌로부터 벗어나 ‘파나’라 불리는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르게 되고 결국 초월적 존재와 하나가 되는 찰나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븐 아라비와 루미 “모든 종교는 근원적으로 하나” 

중세 시기에 등장한 수피 사상가 가운데 종교적 다원주의를 설파한 대표적 인물은 이븐 아라비(1165~1240)와 잘랄 앗딘 루미(1207~1273)였다. 이븐 아라비는 수피주의 고유의 다원주의 사상 체계라고 말할 수 있는 종교일원론(Whdat al-din)을 철학적으로 정립했고, 루미는 이븐 아라비가 정립한 사상을 문학적 형식으로 세련되게 가다듬고 대중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븐 아라비는 12세기 중반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태어나 영적 스승으로부터 지혜를 얻기 위해 평생 동안 메카, 예루살렘, 바그다드, 알레포, 다마스쿠스 등을 주유(周遊)했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해 깨달은 바를 모아 ‘메카에서의 깨달음’ ‘지혜의 보고’ 등과 같은 책을 저술하고 종교일원론 사상의 틀을 마련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많은 종교에서 신이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신 자체가 여럿 있기 때문이 아니라 초월적 실재가 무한히 다양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모든 종교는 겉보기에 달라 보일지라도 결국 하나의 실재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수피 철학자 이븐 아라비(왼쪽)와 그의 대표작 ‘메카에서의 깨달음’

이 같은 맥락에서 이븐 아라비는 진리에 이르는 길에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가 가르쳐 준 길 외에도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 등이 가르쳐 준 다양한 길이 있으며, 각각의 길은 언뜻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파했다. 그는 그 어떤 종교도 신의 무한한 실재를 있는 그대로 완벽하게 보여주는 종교는 없으며, 이 점에서 이슬람도 예외가 아니라고 보았다. 결국 이븐 아라비는 “다른 모든 것을 배격한 채 한가지 신앙으로만 신을 이해하기에 신은 너무나 거대하고 위대하다”라고 말하며 특정한 종교에 집착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13세기 무렵 오늘날 터키의 코니아 지역에서 활약했던 잘랄 앗딘 루미는 수피 철학을 시(詩) 작품으로 승화시켜 수피주의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그가 창시한 마울라위야 종단은 몰아의 경지인 파나에 이르기 위해 수도승이 북과 피리 반주에 맞춰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춤을 추는 ‘세마’ 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는 페르시아어로 ‘마스나위’ ‘그 안에 있는 것이 그 안에 있다’ 등을 저술하여 이븐 아라비가 정립한 종교일원론 사상을 문학적으로 세련되게 가다듬어 발전시켰다.

수피 시인 잘랄 앗딘 루미(왼쪽)와 터키 코니아 박물관에 전시된 루미의 수피 시집 ‘마스나위’

루미는 “길은 다양한지만, 목적지는 하나다”라는 말로써 자신의 종교적 다원주의 입장을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 세상에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있지만 그 차이는 외형적인 것에 불과하고, 내적 본질에서 있어서는 모두 하나의 절대적 존재로부터 기원한 것이라고 설파했다. 또한 이슬람의 가르침에 담긴 보편주의를 깨닫고 근원 종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특정 교리에 집착하는 편향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루미는 이슬람의 쿠란만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경전이 아니라고 지적하며, “모세와 예수를 비롯한 다른 예언자 시대에도 쿠란은 존재했다”라는 말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종교의 경전은 결국 하나의 초월적 존재로부터 나온 말씀을 담고 있기 때문에 모든 종교의 가르침을 믿는 것은 인류 전체의 의무이기도 하다.

 ◇테러리즘의 예방책으로 떠오른 수피주의 

2001년 9ㆍ11 테러부터 최근 스리랑카 테러에 이르기까지 국제 사회를 뒤흔든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이 폭력을 일으키는 위험한 종교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여 왔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타 종교나 문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격을 주창하는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무슬림보다 이븐 아라비나 루미와 같은 사상가들이 설파한 다원주의적 사고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무슬림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최근 이슬람권 안팎의 정치권에서 테러리즘의 담론을 무력화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로 수피주의가 새삼스레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실례로, 미국의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는 9ㆍ11 테러로부터 3년 후인 2004년 보고서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게 수피주의를 무슬림들에게 장려하는 정책을 적극 펼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또한 최근 알제리, 모로코, 파키스탄 등과 같은 이슬람 국가도 자국민이 극단적 이슬람주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피주의 사상을 교육 과정에 반영하고 관련 책자를 보급하는 정책을 적극 펼치고 있다. 물론 수피주의가 당장 중동의 테러, 전쟁, 난민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피주의 전통에 내재해 온 평화, 관용, 공존의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 구성원이 증가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다.

김정명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