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하면서 두 전직 정상의 관계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 부시 전 대통령과 회고와 주변인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두 사람 재임시절 한미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신뢰관계는 두터워졌다고 한다. 그 결과물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서울 용산 미군기지 이전 합의 등 양국 간 오랜 현안의 해결이었다. 한국인 최초 유엔사무총장 배출도 두 사람의 앙상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참모들은 전한다.
노 전 대통령 집권기간은 부시 전 대통령 재임기간과 대부분 겹친다. 두 정상은 노 전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미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한 이후 모두 8차례 정상회담을 하는 등 긴밀한 대화 채널을 유지했다. 하지만 북한 핵 문제 등으로 양국 관계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 ‘불량국가’로 규정하며 북한을 힘으로 밀어붙였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는 국제협력에 기반한 평화적 수단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설득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미 외교에서 자주적 노선을 걸었지만,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간과하지는 않았다. 지지층의 거센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체결을 수용한 게 대표적이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반미(反美) 좀 하면 어떻냐”며 본인만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도 한미동맹을 우선시한 결과다. 부시 전 대통령도 이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모든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며 “저희 사이에 의견 차이는 있었으나 그런 차이가 한미동맹의 중요성, 공동의 가치에 우선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두 정상 간 인간적 신뢰도 깊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이라고까지 했던 부시 전 대통령은 동갑내기 노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정상회담에서 “우리 둘은 친한 친구”라며 예우하기에 이르렀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도 “저희 부부와 노 대통령 부부만 단독으로 가졌던 오찬 생각도 나는데, 그때는 일이 아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며 “이런 것들이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했다”고 추억을 털어놓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어 “대부분의 정상들은 마음 속에 있는 말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할 때가 많지만 노 전 대통령은 직설적으로 본인의 생각을 말하곤 했다”며 “이러한 대화가 양국 정상 간 좋은 관계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노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 사이의 신뢰가 밑바탕이 됐다. 참여정부 청와대에 몸담았던 여권 한 인사는 “정상회담을 마치고 노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이 배석자 없이 따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반기문 이 사람 확실한 친미주의자다’라고 지지를 당부하자, 부시 전 대통령이 박장대소를 하며 참모들을 다시 불러 노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소개했다. 이 관계자는 “두 정상이 재임 때 사이가 별로 안 좋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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