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젠더 이슈’ 휘말린 칸 영화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를 방문한 배우 브래드 피트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배우 마고 로비가 22일(현지시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 참석해 각국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칸=EPA연합뉴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는 한 젊은 여성이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를 배경으로 남자 스태프의 등을 밟고 올라가 카메라로 촬영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지난 3월 90세를 일기로 타계한 ‘누벨바그의 어머니’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다. 포스터 사진은 바르다 감독이 1954년 프랑스 남부 세테 인근에서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찍을 당시 모습이다. 칸영화제가 바르다 감독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모든 여성 영화인에 대한 존중과 예우로 해석됐다.

하지만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기대와 달리 칸영화제는 올해도 성평등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화제가 막바지를 향하는 현재까지도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칸이 남녀 성 대결의 장이 된 양상이다.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로 경쟁부문에 초청된 쿠엔틴 타란티노(미국) 감독은 부적절한 언사로 구설에 올랐다. 22일(현지시간) 열린 기자회견에서 타란티노 감독은 ‘여자 배우(마고 로비)가 두 남자 배우(브래드 피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 비해 출연 비중과 대사가 훨씬 적은 이유가 뭐냐’는 한 여기자의 질문을 받고서는 “당신의 추측을 거부하겠다”며 발끈했다. 이번 신작 영화 이전까지 모든 작품을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과 함께 협업한 그는 와인스틴의 성폭력 논란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 당시 침묵으로 일관해 크게 비판 받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1969년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물간 서부극 배우(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스턴트 대역(브래드 피트)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이비 교주 찰스 맨슨 추종자들에게 살해당한 배우 새론 테이트(마고 로비)를 비롯해 당시 테이트의 남편인 로만 폴란스키 감독 등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도 등장한다. 폴란스키 감독은 아동 성폭력으로 논란이 된 인사다. 타란티노 감독은 폴란스키 감독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를 몇 번 만난 적이 있다”며 “1969년 당시 그는 위대한 감독은 아니었지만 주목받는 감독이었다”고 말했다. ‘새 영화를 폴란스키와 논의했냐’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답하며 그 이상 언급은 피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프랑스 배우 알렝 들롱이 19일(현지시간) 열린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웃음짓고 있다. 칸=EPA연합뉴스
벨기에 배우 상드 반 루아가 19일(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열린 알랭 들롱 주연 '미스터 클라인’ 상영에 앞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는 문구를 등에 새기고 레드카펫에 등장해 들롱의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칸=AFP 연합뉴스

칸영화제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에게 명예 황금종려상을 수여해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명예 황금종려상은 영화로 업적을 쌓은 원로에게 매년 수여하는 상이지만, 가정 폭력 전력이 있고 동성부부의 자녀 입양을 반대한 들롱이 이 상에 적합한 수상자인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프랑스 여성단체들은 “지난해 칸영화제는 성차별과 젠더 이슈에 대해 저항하며 그것을 근절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결국 들롱에 상을 주면서 행동 없는 말뿐이 됐다”며 비판 성명을 냈다. 할리우드 여성단체인 여성과 할리우드도 “들롱은 인종차별주의에도 동조했다”고 지적하며 수상 철회를 촉구했다. 19일 들롱의 대표작 ‘미스터 클라인’(1976) 상영회에는 벨기에 출신 배우 상드 반 루아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는 문구를 등에 새기고 레드카펫에 등장해 항의 시위를 벌였다.

그밖에도 여자 배우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압델라티프 케시시(프랑스) 감독의 ‘메크툽, 마이 러브: 인터메조’가 경쟁부문에 추가 초청되고,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던 한국 김기덕 감독의 신작이 필름마켓에서 공개돼 거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미투 운동과 성평등은 최근 칸영화제를 뒤흔드는 화두다. 지난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배우 케이트 블랏쳇을 비롯해 여성 영화인 82명이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영화제 중심 건물 팔래 드 페스티벌 레드카펫에서 벌인 시위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여성 게스트에게 하이힐을 신도록 한 복장 규정에 항의하는 뜻으로 맨 발로 레드카펫을 걸었다. 영화제 기간 발생한 성폭력 문제를 고발할 수 있도록 핫라인이 개설되기도 했다.

올해 칸영화제는 각 부문의 성평등 지수를 발표하는 등 여성 영화인 참여 확대를 강조하고 있다. 경쟁부문 심사위원 성비를 여성 4명, 남자 4명으로 동일하게 맞췄고, 경쟁부문에 여성 감독 영화를 지난해보다 1편 늘어난 4편을 초청했다. 영화 ‘아틀란티크’를 연출한 세네갈 출신 프랑스 감독 마티 디옵은 칸영화제 72년 역사상 최초로 경쟁부문에 진출한 흑인 여성 감독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나 경쟁부문 초청작이 21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성 감독의 비중은 여전히 적다. 이런 지적에 대해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13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여성 감독의 출품작 수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여성의 권리 신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올해도 뜨겁다. 아르헨티나 다큐멘터리 영화 ‘렛 잇 비 로’의 제작진은 녹색 플래카드와 스카프를 흔들며 레드카펫에 올랐다. 이 영화는 낙태 합법화를 위한 아르헨티나 여성들의 투쟁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반대편에선 심사위원인 배우 엘 패닝이 한 파티에 갔다가 몸을 조이는 드레스 때문에 갑자기 기절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