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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지옥의 대결

입력
2019.05.27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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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22일 아라비아해에서 임무를 수행중인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포토아이
미국과 이란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22일 아라비아해에서 임무를 수행중인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포토아이

사만다 파워 전 유엔주재 미국대사는 대량 학살 전쟁을 ‘지옥으로부터의 문제‘(a problem from hell)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는 유고와 르완다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 같은 만행을 막기 위해선 군사 행동을 포함한 미국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미 행정부는 이란과의 긴장을 점점 키워가고 있다. 세계는 이제 미국과 이란이 ‘지옥의 대결’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나라 모두 일단 공식적으로는 전쟁을 원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 양국의 거침없는 행보는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은 이란 주변 지역의 군사 배치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 미 항공모함 USS 에이브러햄 링컨 등 항모전단이 아라비아해상을 항해한 데 이어 폭격기 편대도 이 지역에 전개됐다. 미 국방부가 최대 1만명의 병력을 중동에 추가 파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보도도 나왔다. 이란에 위협적 행동을 삼가도록 경고함 셈이다. 이에 대해 이란은 이를 군사적 도발로 보고 반발하고 있다. 우라늄 생산을 4배로 늘리는 한편, 미국이 이란핵합의(JCPOA)에 따른 약속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미국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란 의지도 밝혔다. 또 이란군과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 북쪽 걸프 해역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줄곧 이란을 중동과 이외 지역에서 벌어지는 국제적 테러를 포함한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비난해 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 이란 화해 정책을 뒤집은 것도 모자라 이란 정권에 대한 최대 압박을 가하고 있다.

압박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바라는 첫 번째 목표는 이란 정권교체, 적어도 정권의 노선을 바꾸는 것이다. 나아가 이란의 경제를 퇴보시켜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길 원한다. 그리고 중동에서 미국에 가장 충성스럽고 강력한 동맹국인 이스라엘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면서 이란에 반대하는 아랍 국가들(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걸프만 국가들과 이집트 등)과 전략적 관계를 긴밀히 하려 한다.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5년 체결된 이란핵합의를 파기하고 이란 경제의 모든 부문에 영향을 미치는 혹독한 제재를 실행하고 있다. 이미 몇몇 외국기업들은 이란과의 사업을 포기했다. 이란 군사력의 주력인 이슬람혁명수비대는 테러 단체로 지목됐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심지어 “미국은 이란 정권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이슬람혁명수비대든 이란의 정규군이든 모든 공격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자극적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일촉즉발의 군사 대결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이란의 군사력으로는 미국의 화력에 대적할 수 없다. 미국은 이란의 군사시설과 핵 시설, 주요 사회기반시설 등을 재빨리 장악할 수 있다. 세계 석유의 30%가 수송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려는 이란의 시도도 무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란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이란은 미국 또는 이스라엘 등에 엄청난 부담이 될 반격 역량을 갖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좁은 지점은 폭이 3.2㎞ 밖에 되지 않는다. 이란은 미국이 공격하면 방어의 일환으로 함선 몇 척은 가라앉힐 수 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란이 비대칭 전투력을 꾸준히 키워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이란은 현대적인 공군력에서 뒤지긴 하지만 이스라엘 같은 국가를 공격할 수 있는 단ㆍ중ㆍ장거리 미사일의 개발과 생산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같은 랜드마크를 공격 목표로 삼아 이 지역의 금융 붕괴를 촉발시킬 수도 있다. 이란의 미사일이 그리 정확하지 않다 하더라도 상당수는 미사일 방어체계에 걸리지 않는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최첨단 아이언돔 미사일 방어체계도 가자 지구에서 발사된 원시적인 미사일을 모두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더구나 이란은 대리군(proxy forces) 네트워크를 이 지역 전역에 구축해 왔다. 시리아와 이라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레바논에 이르는 이란 주도의 시아파 전략적 동맹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이란의 대리군엔 아프가니스탄의 시아파 무슬림,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 레바논 남부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을 향한 수천 개의 로켓을 보유하고 있다. 헤즈볼라는 지난 2006년 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 더 강해졌다.

무엇보다 이란은 시아파와 이란민족주의의 대의 명분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천명의 극도로 헌신적인 자살폭탄 부대도 동원할 수 있다. 이들은 중동 전역에 퍼져 있다.

이란 정권은 그 동안 지역적 기반을 토대로 국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온 만큼 미국과 충돌이 생겨도 호락호락 당하진 않을 것이다. 작은 군사 공격도 이 지역을 한 순간 걷잡을 수 없는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 양국 모두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아민 사이칼 호주국립대 정치학 교수(아랍 이슬람 연구센터 소장)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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