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수 반토막, 40~50대가 70%... 시대 변화ㆍ경직된 소통구조에 위상 축소
전교조도 2030위원회 설치, SNS 활용하며 미래 운동 방향 모색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정지원(가명ㆍ30)씨는 동료 교사 10여명과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모임에 주기적으로 참석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문재인 후보를 찍었다. 정치 성향을 묻자 주저 없이 ‘진보적’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일찌감치 그에게 눈독(?)을 들인 선배 교사들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가입 권유는 거절했다. 정씨는 “교사들이 힘을 모아 싸워야 할 일들이 별로 없다고 느낀다”며 “어딘가에 속박되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체벌 금지, 촌지 금지, 토론 수업 활성화 등 학교민주화와 교육혁신운동을 선도해 온 전교조가 올해 결성 30년을 맞아 중대 기로에 섰다. 진보진영 대표 교육운동 단체의 위상을 유지하느냐 주저앉을 것인가 사이의 갈림길이다. 한 때 젊고 진보적인 교사들의 상징이었던 전교조였지만, 이제는 내부적으로도 젊은 피 수혈이 최대 과제다. 조직의 명운을 가를 법외노조 해소 문제는 6년째 답보 상태다. 한 때 10만명에 육박했던 조합원 수는 5만명대로 내려앉았다.
전교조의 고령화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23일 전교조에 따르면 조합원(약 5만명)의 세대별 구성은 40대와 50대, 20대와 30대가 약 7대 3 수준이다. 젊은 교사들이 4050 세대에 비해 적다는 점은 조직의 지속 성장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함축한다.
전교조가 젊은 교사들의 외면을 받는 이유는 무얼까. 경기 부천의 한 고등학교 교사 최모(33)씨는 “학교민주화도 많이 이뤄졌고 다른 분야에 비해 교사의 고용 안정성도 좋은 편”이라며 “가입 안 할 이유는 없지만 반대로 꼭 가입할 필요성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전교조가 싸움을 통해 이뤄낸 ‘학교민주화’와 ‘참교육’ 이 현장에 어느 정도 뿌리 내린 상태라, 아이러니하게도 전교조에 가입할 유인이 줄어든 셈이다. 실용적 이유도 있다. 과거 전교조에서만 얻을 수 있었던 수업혁신 관련 정보도 이제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각종 연구회나 소모임에 가면 쉽게 접할 수 있다. 최씨는 “수업이나 생활지도에 도움을 주는 전문적인 학습 공동체는 너무 많다”며 “이 분야에서 전교조는 더 이상 선두주자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교사들의 일상을 바꾸는 과제들에 집중하기보다는, 지도부가 정치색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중도 성향 교사들을 품지 못하는 것도 조합원 감소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경북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 박주만(가명ㆍ33)씨는 “전교조가 내세우는 주장이 지나치게 거시적이라 교사들에게 일상적으로 닿아있지 않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에 대한 비전은 제시하지만 조합원 개인에게 교사로서의 자아 효능감을 느끼도록 하는 방법이나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시절 전교조와 함께 학생 운동을 했던 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 김모(46)씨는 “그 때는 ‘더 이상 아이들이 맞아 죽어서는 안 된다’는 체벌 반대 목소리에 크게 공감하고 지지했다”며 “하지만 20여년 지나 학부모가 돼 바라본 전교조는 교총처럼 하나의 정치 단체나 이익 단체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의명분보다는 실리를 따지는 세대 의식 변화도 전교조 세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교육계에서는 교총이든 전교조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무당파’가 증가하고 있다. 교사들은 대개 임용고사 합격 후 신규 교사 연수 때 여러 교원단체를 처음 접하는데, 이 때 연수를 함께 받는 수백명의 신규 교사들이 전교조보다는 실용적 혜택을 많이 주는 한국교직원공제회 쪽으로만 우르르 몰려가는 풍경이 흔해졌다는게 교사들의 얘기다. 서울 강남구의 한 중학교 교사 최지원(가명ㆍ35)씨는 “교권침해가 발생해도 노조보다는 교직원공제회에서 나온 ‘교권침해 보험’ 같은 게 위기에 나를 더 보호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전교조의 세련되지 못한 이미지, 경직된 소통 구조가 젊은 세대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지연(가명ㆍ28)씨는 “초등학교 때 전교조 선생님들이 ‘좋은 선생님’이었다는 기억이 강해 가입했지만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는 않다”며 “당장 로고부터 ‘올드하다’는 느낌이 너무 강하고 정작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교육 활동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털어놨다.
이런 시대 변화에 전교조도 내부 혁신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취임한 권정오 위원장은 ‘전교조 이름 세 글자만 빼고 다 바꾸겠다’며 개혁 의지를 밝힌 상태다. 지부별로 2030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젊은 세대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주기적으로 만들고 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젊은 세대와의 소통도 꾀하는 중이다. 노시구 전교조 경기지부 정책실장은 “전교조의 원래 정신, 태도대로 젊은 세대들에게 권한을 더 넘겨 주고, 젊은 세대 방식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한다”며 “(조직이)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 조합원이면서 또 다른 교원단체 실천교육교사모임의 회장 정성식씨는 “노조가 대의 체제다 보니, 조합원들의 의견 수렴이 잘 안 되는 등 시간이 지나면서 관료주의에 젖게 될 수밖에 없다”며 “젊은 교사들의 이해와 요구를 보다 잘 반영할 수 있도록 조직 내 직접민주주의 구현 실현에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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