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테네 학당’의 소실점과 거미집 균형점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라파엘로 산치오 ‘아테네 학당’(1511), 바티칸 미술관. 500㎝×770㎝

중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배운 중요한 미술기법이 바로 원근법이었다. 원근법(perspective)이란 용어는 라틴어 perspectiva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리스 기하학의 한 분야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15세기 들어서 고정시킨 시점(時點)에서 투명한 평면 위에 나타나는 장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뜻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회화 원근법’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방식은 화가와 대상 사이에 수직으로 세워진 투명한 평면상에서 화가는 고정된 하나의 시점에서 대상의 윤곽을 보이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그려진 회화는 정해진 위치에서 바라보았을 때 실제 광경을 마치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시점은 중앙으로 응집되어 한 점으로 귀착된다. 이 점을 소실점(消失點)이라고 하며, 이러한 방식에 의한 원근법을 ‘중앙소실 원근법’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석학들 총출동

이렇게 고정된 시점으로 바라본 원근법으로 그린 대표적인 그림이 바로 르네상스 시대에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1520)가 그린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이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바티칸의 ‘서명(署名)의 방’에 그린 프레스코화이다. 라파엘로는 그리스 철학자들을 소재로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들을 흥미롭게 묘사했는데, 원근법에 의해서 그려진 그림으로서는 교본 같은 걸작이다.

이 그림이 재미있는 것은 유명한 철학자들이 다수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화면 가운데 서있는 두 사람이 그들인데 붉은 천을 두르고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사람이 플라톤이며, 이 인물의 모델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한다. 그 오른편에 있는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이며 이들은 각자 한 손에 그들의 저서를 들고 서있다.

그들 앞의 계단 한가운데에는 누더기 옷을 반쯤 벗은 채로 비스듬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디오게네스이다. 그는 기인이었으나 널리 알려진 것처럼 당대의 석학이었다. 그리고 한 발을 계단에 올린 채 옆 사람이 무언가 쓰고 있는 것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는데 유명한 수학자 피타고라스이다. 그림의 앞쪽 오른편에는 여러 학생들에게 둘러싸여서 컴퍼스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는 한 대머리 선생의 모습이 보이는데, 이 사람이 기하학으로 유명한 유클리드이다.

◇등장인물 많아도 질서정연한 이유

이 그림의 건물 공간은 원근감이 뚜렷하여 사실적으로 느껴지며 사람들의 모습이 제각각이지만 전체적으로 통일되어 있고 질서정연한 느낌을 준다. 그림의 소실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이 두 사람이 그림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원근법에 따라 소실점으로 자연적으로 모아지기 때문에 두 사람의 위치는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된다. 실제로 그림에서 선을 그려 소실점의 위치를 찾아볼 수 있다. 건물이 낮아지거나 줄어드는 방향, 바닥무늬가 줄어드는 방향에 따라 선을 그어보면 이 선들이 모두 이 소실점으로 모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양회화에서 원근법의 발달은 회화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다.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가 브루넬레스키(Fillippo Brunelleschi)에 의해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그는 건물의 설계도면을 그리면서 건물이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투시도를 제대로 그리고 싶어했다. 그는 거울에 비친 완성된 건물을 그대로 그리는 방식을 채택했고 원래의 설계도면과 비교해 거리에 따라 커지고 작아지는 변화의 법칙을 발견했다.

그는 이 방식을 통하여 사물이 멀어지며 작아질 때 수학적 비례에 따라 줄어든다는 사실과 그것이 줄어들면서 결국은 하나의 점으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점이 바로 소실점이다. 즉 한 시점에서 공간을 바라볼 때 공간의 한 곳에 소실점이 생기고 주변 사물들은 그 소실점으로 규칙적으로 응축된다는 것이고 이것은 수학적 계산에 의해서 뒷받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근법에 따라 그림을 그리면 마치 실제의 공간을 보는 듯한 사실적인 느낌을 주게 되고 2차원의 평면 위에 3차원의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는 왜 보수적일까

경제학에서도 이와 같은 소실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시장에서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교차되는 점, 즉 균형점이 바로 그러한 점이다. 균형점이란 수요량과 공급량이 일치하여 시장가격이 더 이상 변동할 유인(誘因)이 사라진 상태이다. 이는 특정 시점에서 시장의 청산상태(market clearing)를 보여주는 정태적인 균형점(static equilibrium)이다. 그런데 그림에서는 소실점에 가까이 갈수록 관찰자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는 반면, 시장에서 균형점에 수렴하는 데에는 가격의 변동에 따라 수요 공급량이 조정되는 ‘시간’이 걸린다.

일반적으로 시장은 불균형상태에 있다. 현실경제에서 가격은 계속 변하고 이에 따라 수요와 공급량이 불일치되는 상태가 지속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이런 불균형상태는 끊임없이 시장이 청산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믿는다. 특히 신고전학파(neo-classical) 경제학자들에게는 시장은 안정적인 균형점으로 수렴(converge)하리라는 일종의 금과옥조 같은 신앙을 갖고 있다.(그래서 주류 경제학자들은 대개 보수주의자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는 시차(時差)를 두고 생기는데, 이로써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초래된다. 이러한 불균형은 소비자나 생산자들이 가격 변동에 적응하게 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정도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시장에서 소비자의 행동은 비교적 간단하다. 소비자는 가격을 보고 즉시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생산자는 시장가격에 맞춰 생산계획을 수립하고 제품을 시장에 공급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시간 때문에 의사결정과 시장에 나올 때 까지는 상당한 시차가 존재한다. 농작물의 경우를 보자. 가령, 올해 쌀 가격이 좋다고 해서 쌀 재배를 늘렸는데 다음해 수확량이 갑자기 늘면 가격이 떨어질 수도 있다. 또한 노동시장에서 대졸 노동자 공급에서도 이런 시차 문제는 심각하다. 대졸 노동자를 노동시장에 공급하는데 보통 4년 걸리는데, 4년 후에 급속한 경기침체가 오면 대졸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급감할 수도 있다. 그러면 노동시장에서 초과공급을 유발하게 된다.

안정적인 시장에서는 초과공급이나 초과수요가 생기게 되면 시장가격의 조절기능을 통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과분은 점차 줄어들게 되며 결국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균형점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수렴 과정을 규명한 이론이 있는데, 균형점으로 수렴하는 모양이 마치 거미집과 비슷하다고 해서 거미집 모형(cobweb model)이라고 부른다. 거미집 모형은 시차를 두고 시장이 조정되어 균형점에 수렴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단순한 동태적 균형(dynamic equilibrium)이론의 대표적인 모형이다.

◇라파엘로의 짖궂은 라이벌 대접

마지막으로, 그림 ‘아테네 학당’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족(蛇足) 한 가지. 우리는 이 그림에서 라파엘로의 재치가 번뜩이는 숨은 그림을 찾아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라파엘로는 당대의 천재화가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미켈란젤로를 자신의 모습과 아주 대조적으로 이 그림에 교묘하게 숨겨 놓았다.

우선 미켈란젤로를 찾아보자. 디오게네스 앞쪽 왼편 계단 밑에는 한 사나이가 왼손으로 턱을 괴고 책상에서 무언가 쓰고 있는데 이 사람이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철학자이다. 그의 모습이 바로 미켈란젤로를 모델로 해서 그려진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미켈란젤로를 그려 넣은 것은 분명 경의의 표현이다. 하지만 주변부 인물로 처리한 것이다. 그건 일종의 조롱이었다. 라파엘로는 당시 그의 경외의 대상이었던 미켈란젤로를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미켈란젤로에 대한 자신의 시기심을 해소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뿐만 아니라 라파엘로는 자신의 얼굴도 교묘히 숨겨놓았는데, 유클리드 뒤편에 공을 들고 있는 두 사람 옆에 검은 베레모를 쓴 미소년의 모습이 눈에 띈다. 바로 그 자신이다! 라파엘로는 이처럼 그 자신은 미켈란젤로와는 아주 대조적인 모습으로 그려 넣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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