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뒷줄 왼쪽 두번재)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22일(현지시간) 공식 사진 촬영 행사에서 웃음 짓고 있다. 칸=EPA연합뉴스

“저는 스스로 장르 영화 감독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조금 ‘이상한’ 장르 영화를 만들고 있죠.”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영화 ‘기생충’에 대해 “(예전) 봉준호가 더 눈부신 모습으로 돌아왔다”(버라이어티)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를 봉준호 감독은 ‘장르 변칙’에서 찾았다. 22일(현지시간) 칸영화제 중심 건물 팔래 드 페스티벌에서 열린 ‘기생충’ 공식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장르적 흥분을 추구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며 “그렇게 자기 분열하며 열린 공간 안으로 정치적 메시지가 끼어들고 한국인의 삶과 역사, 인간적 고뇌가 섞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2003년 ‘살인의 추억’ 이래 봉준호 감독의 가장 성숙한, 한국 사회 현실에 대한 발언”(할리우드리포터)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기생충’은 봉 감독이 2009년 ‘마더’ 이후 10년 만에 한국에서 촬영한 영화이기도 하다. 앞서 ‘설국열차’(2013)는 할리우드 배우들과 작업했고, ‘옥자’(2017)는 온라인 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가 제작했다. 봉 감독은 “평소 하던 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스토리보드도 직접 그리면서 편안하게 작업했더니 원래 내 느낌대로 영화가 나온 것 같다”며 “기이하고 변태적인 이야기를 격조 있게 연기해 준 배우들에게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생충’이 전날 밤 공식 상영된 이후 칸 현지에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단순한 예우나 의례적 언사가 아닌 열광에 가까운 반응이다. 한국 영화 최초 황금종려상(최고상) 수상에도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간 분위기다. 크리스티앙 준 칸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은 “‘기생충’은 올해 초청작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라며 각별한 애정을 내비쳤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맨 왼쪽)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공식 상영회가 열린 21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뤼미에르 극장 레드카펫에 섰다. 칸=EPA연합뉴스

공식 상영 당시에도 극장 안은 흥분으로 들끓었다. 엔딩크레디트가 떠오르기도 전에 갈채가 쏟아지기 시작해 기립박수가 10분간 계속됐다. 객석 곳곳에서 “트레 비앙(Tres bienㆍ매우 좋다)” “브라보”라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한국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칸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들 중에 압도적으로 분위기가 좋았다”는 평이 나왔다. 봉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등 이날의 주인공들은 감격에 눈시울을 붉혔다. 영화 ‘설국열차’와 ‘옥자’로 인연을 맺은 영국 배우 틸다 스윈턴도 극장을 찾아와 봉 감독을 포옹하며 뜨겁게 축하했다.

‘기생충’은 가난하지만 사이 좋은 가족이 젊고 부유한 IT기업가 가족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계급 충돌을 그린다. 가족 모두가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는 친구 소개로 박 사장(이선균)네 집에서 고액 과외를 하게 되고, 기택네 가족은 순진하고 단순한 안주인 연교(조여정)를 교묘하게 이용해 박 사장의 호화 저택에 침투하듯 발을 들인다. 과외 교사, 가사도우미, 운전 기사 같은 신분제 직업이 두 가족이 만나는 접점으로 작용하고, 서서히 경계가 지워지기 시작하면 스크린은 웃음기를 거두고 파국의 그림자를 드리운다.

‘설국열차’로 계급사회 전복을 시도하고 ‘옥자’로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고발했던 봉 감독은 양극화된 한국 사회를 재료 삼아 신자유주의 체제를 해부한다. ‘공생’이 불가능한 곳에서 ‘기생’은 일종의 생존 투쟁이다. 기생 아래 또 다른 기생이 존재하는 아이러니가 충격과 공포를 부른다. 상영 중 박수가 터져나왔을 정도로 폭발력이 크다. 해학과 풍자, 잔혹한 비극이 뒤엉킨 ‘기생충’은 봉준호식 블랙 코미디의 정수로 꼽을 만하다. 박 사장네 저택과 기택네 반지하 방의 선명한 공간 대비, 그 둘을 연결하는 가파른 계단의 수직적 이미지 등 빼어난 미장센도 주제의식을 북돋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평론가 피터 브래드쇼는 “‘기생충’이 덩굴손처럼 뻗어 와 당신에게 깊숙이 박힐 것”이라는 평을 남기며 별 5개 만점에 별 4개를 매겼다.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계급사회와 불평등에 관한 문제는 전작에서도 보여줬지만 ‘기생충’에서 더욱 명징하게 드러난다”며 “봉 감독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유머, 디테일, 캐릭터가 잘 버무려진 작품”이라고 말했다.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봉 감독이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며 “보편성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선입견 없는 해외 관객들이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기생충’은 막바지를 향해 가는 칸영화제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기생충’과 같은 날, 배우 브래드 피트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마고 로비가 총출동한 쿠엔틴 타란티노(미국)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도 공식 상영됐다. 두 대가의 ‘빅 매치’는 올해 칸영화제 최고 화젯거리였다. 봉 감독과 타란티노 감독은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가디언에서 별 5개 만점을 받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스페인) 감독의 ‘페인 앤드 글로리’와 켄 로치(영국) 감독의 ‘소리 위 미스드 유’도 칸 현지 평론가들 사이에서 ‘기생충’의 경쟁작으로 거론되고 있다. 폐막식은 25일 오후에 열린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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