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진이, 지니'를 낸 정유정 작가. 올해로 등단 10년째를 맞은 그는 “10년 안에 할 수 있는 시험을 모두 했다”며 만족해 했다. 고영권 기자

그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해 밤 10시에 끝난다. 거의 매일 3시간씩 운동을 한다. 킥복싱부터 스피닝까지. “철인3종 경기에 나가고 싶다”고 하는 그를 ‘육체파 작가’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정유정(53) 작가 이야기다. 그의 소설은 에너지로 끓는다.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으로 구성된 ‘악의3부작’에서 이야기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줬다. 때문에 ‘스릴러 작가’로 각인됐지만, 그는 성격이 밝다 못해 우렁찬 사람이다. 활달한 에너지가 넘실대는 소설 ‘진이, 지니’로 정유정이 돌아왔다.

정유정이라는 이름은 ‘브랜드’가 됐다. 2009년 등단해 한국 장편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간 낸 소설 6권과 에세이 1권이 총 138만부 팔렸다.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난 정 작가는 “10년까지는 보통 신인으로 쳐 주니, 하고 싶은 걸 맘껏 해 보려고 했다”며 “스케일을 한계까지 키우고 이야기를 짓는 방식을 구축하는 시기였다”고 했다. 이어 “어느새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졌고, 이번 소설은 그 첫 번째 성과”라고 말했다.

‘진이’와 ‘지니’는 각각 침팬지 사육사인 여성과 그의 영혼이 빙의된 암컷 보노보다. 진이는 대저택에 감금돼 있던 보노보를 구출하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의 영혼은 지니의 몸에 갇히고 만다. 진이가 제 몸으로 돌아가려 분투하는 사흘 간의 여정이 소설의 줄기다. 보노보가 살던 아프리카 밀림과 소설의 배경인 강원도 원주를 오가며 정 작가 특유의 세밀한 묘사가 쉴새 없이 펼쳐진다.

소설의 출발은 정 작가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임종을 앞둔 엄마가 사흘 동안 의식이 없으셨어요. 엄마의 영혼은 어디 있을까, 엄마 꿈 속에서 나는 어떤 풍경을 만나고 싶을까 생각하다 보니 사바나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소설에 영장류가 등장했죠.” 정 작가는 원래 침팬지를 소재로 쓰려 했다. 그러나 공격적이고 정치적인, 인간 수컷에 가까운 침팬지의 성격이 소설의 톤과 맞지 않았다. “보노보는 모계 사회를 구성해 살고, 연대를 중시해요. 감수성도 풍부하고요. 소설에 딱이었죠.”

신간 '진이, 지니'를 펴낸 정유정 작가가 21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사옥에서 소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소설은 진이와 ‘민주’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민주는 죽으려고 강원도를 찾았다가 우연히 사고 현장을 목격하고 지니를 떠맡는다. 제 몸을 되찾으려는 진이를 도우면서 민주는 잃어버린 삶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진이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을, 민주는 삶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을 보여준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노력을 인간의 자유 의지라고 한다면, 죽음 앞에서도 자유의지는 유효할까요? 소설은 그에 대한 답입니다.”

생소한 소재인만큼 방대하고 치밀한 취재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정 작가는 소설을 준비하면서보노보에 관한 책을 모조리 읽었다. 생물학자인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고 일본 교토대 영장류센터, 구마모토 보노보 보호구역, 독일 베를린 동물원 등을 직접 찾아가거나 질문을 보냈다. 정 작가는 인터뷰 도중 스마트폰을 꺼내 직접 만나 본 보노보의 사진을 보여 줬다. “물기가 많아서 그런지 좀 슬픈 눈이에요. 눈이 마주치면 마음이 확 열리죠. 눈으로 말을 거는 것 같아요.”

정유정 작가가 신작 장편 ‘진이, 지니’를 들어 보이고 있다. 고영권 기자

소설은 거침없이 써졌다. 마지막 장을 쓸 때 난관을 만났다. ‘스펙터클’에 능한 정 작가였기에, 초고에선 인물들이 정신 없이 내달리며 결말을 향했다. ‘최초의 독자’인 남편이 “다시 쓰는 게 좋겠다”고 했다. 갈피를 못 잡고 매일을 술로 보낸 지 3주째 되던 날, 잔잔한 독백으로 이뤄진 지금의 결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렇게 내가 또 하나의 산을 넘었구나 싶었어요. 남편이 자기 덕이라고 생색을 엄청 내더라고요(웃음).”

등단 이래 줄곧 ‘이야기꾼’으로 불린 정 작가는 이야기꾼의 속성을 ‘테크니션’으로 한정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플롯, 문장, 묘사, 물론 중요하죠. 그런데 그것만 갖고는 글을 쓸 수 없어요. 독자의 심장을 움켜쥐고 흔들 수 있어야 하죠. 스티븐 킹을 누가 테크니션이라고 부르나요? 독자가 정신 없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고, 이야기에서 빠져 나왔을 때 생의 이면을 깨닫게 하는 사람, 그게 이야기꾼이죠. ‘한국의 스티븐킹’이라는 수식어는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저도 독자의 심장을 쥐고 흔들고 싶네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