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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과 트럼프의 용단

입력
2019.05.23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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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이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승인과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800만달러 공여 추진 등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이 1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승인과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800만달러 공여 추진 등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은 미국 측의 ‘선 핵포기’ 입장 철회를 북미협상 재개의 관건으로 보고 있다. 하노이 회담에서는 미국이 실현 불가능한 방법, 즉 북한의 일방적 핵무장 해제를 노린 ‘선 핵포기’ 요구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대북 제재가 비핵화 달성을 도울 것이라고 보지만, 북한은 제재를 가해도 먼저 협상하자고 다가서는 일은 없을 거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선 핵포기와 제재 유지 입장을 고수하는 한 북미 협상 재개가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시사한다. 이런 인식 아래 북한 측에서는 트럼프 대통령만이 지금의 교착 국면을 타개할 수 있다고 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4월 12일 시정연설에서 “올해 말까지 3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미국(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을 촉구한 바 있다. 어쩌면 북한 측이 지금 유일하게 기대고 있는 것은 미국의 2020년 대선인지 모른다. 내년 미국 대선이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을 이끌어 낼 수도 있는 국내정치적 환경으로 보는 셈이다. 이같은 북한 측의 인식은 “제시된 시한부를 지키지 못하면 그(트럼프 대통령)는 재선이 걸린 선거를 앞두고 대조선 외교에서 거둔 성과를 수포로 돌릴 수 있다”(조선신보 5월 18일 보도)고 경고한데서도 잘 드러난다.

북한이 대미 관계에만 올인하며 그들 방식의 전략적 인내를 하고 있는 것인데, 이런 접근이 과연 합리적인지는 의문이다. 북미 관계가 풀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소극적 인식에서 벗어나 제재 유지 국면에서도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을 이끌어 내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남북관계의 자율성과 우리 정부의 독자성 확보는 북한 측이 어느 정도 힘을 실어주어야 가능하다. 사실 북한이 대남 비난을 쏟아내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을 아직도 정리하지 못한 듯하다. 아마 지난 17일 우리 정부가 승인한 개성공단 투자 기업인들의 방북에 대한 호응 여부가 향후 남북관계 재시동을 위한 의미 있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남측 당국이 “외세의 눈치나 보며 북남 관계 문제에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어 “과연 북남 선언들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는가 하는 의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면서 그 예로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를 제기해 왔다. 김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우리는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였던 남측 기업인들의 어려운 사정과 민족의 명산을 찾아보고 싶어하는 남녘 동포들의 소망을 헤아려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1월 10일 신년기자회견 연설을 통해 북한의 조건 없고 대가 없는 재개 의지를 환영하면서 이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의 재개를 위해 북한과 풀어야 할 과제는 해결되었고, 앞으로 국제제재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 승인은 이런 노력의 산물로 봐야 한다.

사실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 승인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의 재개는 미국 측의 미세하지만 의미 있는 대북 태도 변화로 읽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제재만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비핵화 업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의 압류 등에서 보는 것처럼 국제적 제재는 유지하면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지하고, 개성공단 기업인 방북을 사실상 동의했다. 이전의 명시적 반대 입장을 고려하면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 될 미국의 태도 변화다. 북한은 개성공단 방북 허용을 포함한 남북관계 진전이 트럼프 대통령의 용단을 이끌어 내는 단초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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