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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에고 인플레이션(Ego-inflation)의 시대다. 나를 지키는 것이 최고의 지상명령이 된 시대,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하고 나로 끝나는 시대가 와버렸다. ‘나를 사랑하라’, ‘나는 소중합니다’, ‘나만의 자존감을 지키세요’라는 상투적인 위로에 지친다. 자존감의 의미가 과대 포장되고, ‘나’의 경계를 넓혀 나의 가능성을 확장하기보다는 ‘내가 손해보지 않는 선에서’ 나를 방어하는 일에 급급하다. 현대인은 ‘나’라는 단어를 도처에서 남발한다. 상대의 생각을 경청하기 전에 이미 ‘나의 주장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나는 결코 손해보진 말아야지’라는 결심을 하고 나온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에고에 중독된 우리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을 바라보는 듯하다. 해석보다는 표현을 중시하고, 경청보다는 과시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창조성과 자율성, 공감능력과 연대감이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나로부터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사고방식의 문제는 그 ‘나’라는 표현 뒤에 감춰진 주어가 셀프(self: 내면의 자기)가 아니라 에고(ego: 사회적 자아)라는 점이다. 에고의 캐치 프레이즈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니 누구도 나의 영역을 침해할 수 없다’로 수렴된다. 셀프의 목소리는 훨씬 복잡하고 풍요로우며 때로는 자기모순적이지만, 그 복잡미묘함 자체가 인간의 본성이다. 나를 괴롭히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조차 끝내 사랑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것이 셀프의 본성이니까. 나에게 손해가 되는 일조차도 오직 사랑이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내면의 자기다. 내면의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 보여주는 자아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의 무의식은 균형을 잃게 된다. 셀프의 완전성을 추구하는 ‘개성화’와 에고의 인정투쟁을 추구하는 ‘사회화’는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 균형을 잃었을 때 에고 인플레이션으로 치닫게 된다. 요컨대 에고가 눈에 보이는 행복(happiness)을 추구한다면, 셀프는 그런 것들로는 설명될 수 없는 존재의 전체성(wholeness)을 추구한다. 눈에 보이는 행복을 얻지 못해도 다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가치와 열망을 따르는 것, 다만 내 온 마음을 다해 사는 것, 그것이 셀프의 지향성이다.

나에게 여행이 선물해준 것이 바로 에고로부터의 해방과 셀프의 재발견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타인의 시선에 비친 내 모습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게 했기 때문이다. 여행은 에고의 방어기제와 페르소나의 연기력을 잠시 접어두고, 셀프의 숨죽인 아우성을 들을 수 있는 최초의 기회가 되어주었다. 여행을 통해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의무를 느꼈다. 누구도 날 모르고, 글쟁이의 가장 소중한 무기인 언어조차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환한 미소만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내 가방에 조용히 집어넣고, ‘강남스타일’과 ‘손흥민’을 예찬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에는 아름다운 장소와 아름다운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친절하게 알려주면서, 나는 누구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더 나은 사람, 누구에게나 친절한 이방인이 되기 위해 애쓰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듯 내 마음 깊은 곳의 나 자신이 가장 기뻐하는 일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개성화다.

나의 에고는 자꾸만 새로운 걸 도전해보라고, 이 정도 도전으로는 아직 어림도 없다고 충동질한다. 욕심많은 에고가 나를 이렇게 펌프질 할 때, 차분하고 진중한 나의 셀프는 이렇게 속삭인다. 생의 한순간, 한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라고. 아무리 바빠도, 타오르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느낄 시간을 빼앗기지 말라고.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내가 먼저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사랑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라고. 에고와 셀프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때, 나는 더 강인하고 지혜로운 나 자신이 된다. 우리의 셀프는 저마다의 아름다운 월든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 마음 속의 월든을 지켜내야 한다. 아무도 나를 간섭하지 않는 곳에서 비로소 진정한 나자신이 될 수 있는 권리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따스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내면의 오두막을.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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