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제3국 참여 중재위 수용을” 격에 안 맞게 대통령 압박 
 내달 오사카 G20서 한일 정상회담 ‘보이콧’ 망신주기 의도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장관이 지난 2월 15일(현지시간) 독일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갖고 있다. 외교부 제공

고노 다로(河野太郎) 일본 외무장관이 21일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며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다음달 오사카(大阪)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를 고리로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제3국 위원이 포함된 중재위원회 개최 수용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전날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의 신임장 제정 당일 사전 통보 없는 외무성 초치 등 일본 정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

고노 장관은 이날 외무성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3국 위원이 참여하는 중재위원회 설치를 요청한 것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한국 정부를 대표해 제대로 책임을 갖고 대응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노 장관이 이 문제에서 문 대통령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동급인 고노 장관이 중재위 설치를 요청한 지 불과 하루 만에 한국 대통령까지 거론하며 압박에 나선 걸 놓고 당장 외교 결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노 장관은 “(일본 정부가) 대응을 자제해 왔지만, 이낙연 국무총리가 ‘정부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밝히면서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간 강제징용 문제를 책임져왔던 이 총리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된 만큼 국정 최고책임자인 문 대통령이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국내적으로 대응책 검토에 한계가 있다면 당연히 중재위에 응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필요하다면 국제사법의 장에서 제대로 해결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이 중재위 설치를 수용하지 않으면 국제사법재판소(ICJ)에도 제소하겠다는 것이다.

22~23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례 각료이사회에서 강경화 장관을 만나 강제징용 판결 문제 등을 논의키로 한 고노 장관이 느닷없이 문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한일관계 개선보다는 오히려 한국을 망신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최근 일본 외무성의 행보는 이례적으로 거칠다. 전날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외무 차관이 남관표 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중재위 수용을 요구했는데, 당시 남 대사는 나루히토(德仁) 일왕을 예방하고 신임장을 제정한 직후였다. 신임장 제정일 사전 통보 없이 대사를 초치한 건 지극히 무리한 조치다. 한국 외교 소식통은 “일본 정부 행태는 한일관계 실질적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국내 여론을 향한 제스처로 보인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문 대통령의 G20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타진해 왔다. 반면 일본 정부는 G20 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의 빡빡한 일정을 이유로 정상회담에 소극적이다. 외교적 홀대 논란이 불거져도 의장국 정상이란 명분으로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다는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일본의 압박은 모처럼 잡게 된 주도권을 활용해 강제징용 문제를 최대한 유리한 형국으로 돌리려는 계산으로 해석된다.

한편 한일 청구권협정은 중재위 요청이 상대 국가에 접수된 뒤 30일 이내 양국이 중재위원을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한국이 다음달 18일까지 중재위원을 선임하지 않으면 일본은 이른 명분으로 정상회담을 거부할 것이라는 얘기다. 요미우리(讀賣)신문도 이날 “일본 정부는 한일 정상회담 수용 여부를 중재위 설치 요청에 대한 한국 측 대응을 보고 판단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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