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와 혐오 그대로 두면 재앙 초래
과거에 갇힌 한국당, 일차 잘못이나
청와대와 여당도 정치력 발휘해야
[2019-05-21T15_3653165]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이틀 앞둔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고인과 관련된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증오와 혐오의 정치가 “사이코패스 수준”으로 가고 있다. 광주 망언을 한 국회의원을 징계하진 않으면서 광주를 방문하는 자유한국당 대표뿐 아니라 대통령도 혐오의 중요 표적이 되었다. 일부 정치인의 자질이나 실수에 국한된 문제일까? 아니다. 여러 온라인 기사에 댓글로 달리는 대통령 혐오 표현들을 보라. 이미 뿌리가 깊고 질기다. 혐오의 정치는 일부 정치인과 소수 극단주의자를 넘어, 보통의 당파적 지지자들에게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극단성에 의지하며 그것을 방향타로 삼아 나간다. 이대로 계속 가면, 사회는 껍데기가 되고 혐오만 덩그렁 남을 것이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좌파 독재’라는 허황된 비난을 외치는 한국당과 그 지지자들 책임이 일차적으로 크다. 그러나 그들 탓만 할 수 있을까? 적대감과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에서 청와대와 여당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청와대가 그동안 선택한 정치적 결정을 보자. 한국당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도 그들이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정치적 협상의 형태로 제공하고 그럼으로써 온건한 보수가 수구로부터 분리되게 하는 길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을 도덕적으로 몰아붙이면서 계속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여기고 그들과 정치적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길? 후자였다.

그런데 한국당을 도덕적으로 무시하고 정치적 협상을 거부함으로써 그들의 세력이 약화되었는가? 유감스럽게도 아니다. 탄핵에 크게 동참하고 또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정부를 상당히 지지했던 온건한 보수층이 다시 한국당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정확한 흐름이 드러난다. 한국당 지지율은 지난해 7월 평균 10% → 8월 11% → 9ㆍ10월 12% → 11월 15% → 12월ㆍ올해 1월 18% → 2월 19% → 3월 21% → 4월 22%로 꾸준히 상승했으며, 5월 둘째 주엔 25%까지 올랐다. 2016년 탄핵 국면 이후 최고치다. 다른 조사에선 심지어 민주당과 거의 비슷한 수치도 나온다. 탄핵 국면에서 쪼그라들었던 한국당이 다시 살아났다! 이런 일이!

정부는 계속 그들 탓을 했다. 물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과 긍정적인 정치적 협상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 그들을 혐오하는 정치? 그러나 그들을 적폐 대상으로만 삼는 전략은 효과가 없었을 뿐 아니라 역효과를 내고 있다. 물론 정부가 그동안 정책과 도덕성에서 확실하게 우월성을 보여 주었다면, 그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인사 정책에서 실수를 했고, 경제 정책에서도 유능하지 못했으며, 북한과 협상하는 데 조급했다. 이 일련의 정부 운영의 실수와 미숙함에 대해 청와대가 솔직하고도 시원하게 실수와 미숙함을 인정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매우 부족했다. 큰 잘못은 없었다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여러 실책이 있었으며 거기에 정부도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하는 게 그리 어려운가? 이전 정부와 다르다는 데에 만 집착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면, 도덕적 자만이다.

아니면 정말 ‘경제를 비롯해 모두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착각이다. 갈등은 너무 많고, 정부의 조정 능력은 많이 부족하다.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드러나듯 야당의 협조를 통해 국회에서 개혁 입법을 추진하는 일을 피할 수 없다. 도덕적 판단을 일단 옆으로 접어두고,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개혁 입법을 하지 못한다면, 책임은 정부에도 있다. 그때도 그들 탓에 못했다고 둘러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제대로 계승되지 않고 있는 중요한 노무현 정신이 있다. 증오의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도덕적으론 가까이하기 힘든 정당과도 연정을 해야 한다고 결단한 정신. 정부는 왜 이 정신을 이어받지 못하는가? 그리고 촛불의 대단한 성과가 뭘까? 온건한 보수층을 포함한 모두가 대립적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사회 개혁에 참여한 것 아닌가. ‘촛불 정부’라는 자부심은 넘치지만, 이 촛불 정신은 무시되고 있다.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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