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에서 자유연대, 턴라이트 등 보수성향 단체들이 5·18유공자 명단공개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적인 우주론의 시작은 1917년부터였다. 주인공은 역시나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1915년 자신의 새로운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뒤 이를 우주 전체에 적용했다. 아인슈타인 이후 지난 100년 동안 인류는 우주에 대해 아주 많이 알게 되었다. 우리 우주는 약 138억 년 전에 무한히 큰 밀도와 온도를 가진 특이점에서 시작됐고, 그 이후로 시간에 따라 계속 팽창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우주에 대해서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도 더 많아졌다. 우리 우주의 평균 에너지 밀도는 1㎥의 부피 속에 양성자가 약 6개 있을 정도로 텅 비어 있다. 그나마 그 에너지 밀도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95%의 정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5%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 100년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연구에 매진했음에도 결국 우리가 알아낸 것은 이 우주가 암흑천지라는 결론이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굉장히 똑똑해서 그 암흑천지를 구성하는 두 가지 다른 요소를 알고 있다. 하나는 암흑물질로서 전체 에너지 밀도의 약 27%를 차지한다. 나머지 68%를 차지하는 요소는 암흑에너지라 부른다. 결국 우주에 대해서 알아낸 게 뭐냐는 핀잔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대단한 정밀도로 정확히 알고 있다.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 이 암흑의 장막을 걷어낸다면 인류의 우주에 대한 이해가 비약적으로 도약할 것이다.

과학은 자연과 우주의 암흑을 걷어 오며 발달해 왔다. 인간사 문명의 역사도 우리 사회의 암흑을 걷어 온 역사였다. 요 며칠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큰 비극인 5ㆍ18 광주항쟁을 뒤덮고 있던 암흑의 장막이 조금씩 벗겨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5ㆍ18의 비극이 일어난 지도 내년이면 벌써 40년이다. 인류가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알게 된 역사는 그 절반 정도의 시간 밖에 안 된다. 5ㆍ18의 남은 암흑을 걷어내려면 ‘발포’ 책임자부터 밝혀야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전두환은 발포 명령을 내린 게 아니라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당시 핵심 관계자의 증언은 충격이었다. 특히 ”5ㆍ18은 계획된 시나리오였다.“는 결론은 ‘발포가 아닌 사살’과 호응을 이루며 5ㆍ18을 바라보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지도 모른다. 5ㆍ18이 전두환 일당의 군사반란과 권력찬탈 과정에서 일어난 시민의 저항과 계엄군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비극이 아니라 처음부터 군사작전으로 기획된 일종의 제노사이드(genocide)였던 셈이다.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자면 지금까지 발포책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던 지난 세월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몰랐던 암흑의 시절이었다.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 시절에 이루어진 전두환 등에 대한 사법처리는 관련자들의 죗값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1997년 대법원이 전두환에게 12ㆍ12 및 5ㆍ18 관련해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확정판결문을 보면 ‘발포’라는 말은 있어도 ‘사살’이라는 단어는 찾기 어렵다. 전두환에 대한 법원의 유죄판결문조차 얼마나 전두환 일당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내란목적살인죄이다. 대법원 판결은 1980년 5월 27일 있었던 재진입작전(이른바 상무충정작전)에 대해서만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했다. 최초의 계엄군 집단사격이 있던 5월 21일과 22일 자위권 발동 지시 등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내란목적살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5ㆍ18이 처음부터 계획된 제노사이드 시나리오였고 시민들을 선동할 목적의 특수부대인 이른바 ‘편의대’까지 투입했으며 전두환이 5월 21일 광주에 직접 가서 자위권 발동을 지시한 게 아니라 사살명령을 내린 점이 인정됐다면 법원은 아마도 다른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거의 40년 만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그날의 진상을 하루빨리 정확하게 규명하고 새로운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전두환 일당의 반인륜범죄를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5ㆍ18을 뒤덮은 암흑의 장막이 걷히는 데에 40년도 모자란다면, 예컨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데에도 그만큼의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진실의 조각들이 어둠에 가려진 채 세월의 풍파에 씻겨나가는 동안, 유래 없는 반인륜범죄를 저지른 죄인들은 오히려 큰소리치면서 아직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이들에 편승해 권세와 이득을 누리려는 자들은 아직도 망언과 패륜으로 ‘제2의 상무충정작전’을 감행하고 있다. 5ㆍ18 기념일에 금남로에서 ‘부산갈매기’라니, 그 노래를 사랑하는 부산 사람으로서 이런 패륜은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망발을 일삼은 국회의원들은 당장 금배지부터 떼야 한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에서 잘 살 수 있으리라는 나쁜 교훈을 절대로 후대에 넘겨서는 안 된다. 지금은 말과 노래로 제노사이드를 찬양하는 자들이 언젠가는 진짜 총칼을 들고 탱크를 몰고 헬기를 띄워 우리를 다시 ‘사살’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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