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쿠르, 직접 해봤더니
17일 오후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 오픈클래스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파쿠르를 연습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파쿠르라니, 그거 네가 할 수 있는 거 맞냐?”

파쿠르(parkour)를 배운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쿠르는 안전장비 없이 벽을 오르내리고, 높은 고층건물을 넘나드는 아찔한 익스트림 스포츠다. 영화에선 어떤 운동이든 잘할 것 같은 근육맨들이 날다람쥐처럼 점프를 한다. 물론 알고 있다. 전후좌우 전방위로 뱃살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2년차 기자에겐 무리일지도 모른다고. 그렇지만 일단 우격다짐으로 도전을 외쳤다. 콘크리트의 회색빛 도시를 맨몸으로 정복해보자. 파쿠르의 저항정신을 온몸으로 표출해보자.

국제공인 파쿠르 지도자 자격증 보유자 김지호(31) 파쿠르제너레이션즈코리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실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저도 할 수 있나요?”고 어렵게 말을 꺼내자 그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파쿠르예요”라고 답했다. 내가 생각했던 파쿠르와 실제 파쿠르는 다른 건가. 결국 그가 운영 중인 오픈 클래스로의 초대에 흔쾌히 응했다. 화려한 몸짓 이면에 숨겨진 파쿠르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서.

17일 오후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 오픈클래스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파쿠르를 연습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규칙ㆍ경쟁 없는 파쿠르, 전혀 안 무섭더라

금요일인 17일 오후 7시 서울 신촌에 위치한 한 대학교. 축제로 떠들썩했던 캠퍼스 한 편에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였다. 수원에서 올라온 중학생부터 퇴근하자마자 달려온 회사원까지. 나이도 15세에서 30대 후반까지 다양했다. 오늘이 세 번째 수업이라는 회사원 서유경(29)씨는 “이게 될까 싶었던 것도 ‘이렇게 해보세요. 할 수 있어요’라며 용기를 북돋아주니 나도 모르는 사이 해내고 있더라”고 말해줬다. 반신반의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이날 강의 주제는 ‘파쿠르 트레일 러닝(parkour trail running). 캠퍼스 곳곳의 장애물을 극복하며 정해진 코스를 달리는 내용이었다.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푼 뒤 무리 지어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안 뛰었는데 숨이 차 올랐다. 그렇게 도착한 첫 번째 코스는 월런(wall-run). 월런은 2~3m 높이의 벽을 타고 오르는 파쿠르의 기본동작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달려가면서 얻은 추진력으로 벽을 발로 차고 두 손으로 짚고 올라가면 됐다.

시범을 따라 뛰어봤다. 한 번에 못 올라가 벽을 붙잡고 낑낑대다 엉성하게 올랐다. 고등학교 시절 담 넘어 PC방에 갔던 추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첫 시도는 실패다. 하지만 김 대표의 반응이 이상했다. “잘하시는데요”라며 자신감을 북돋아줬다. “몸을 최대한 수직으로 유지하면서 발로 지그시 벽을 눌러 몸을 띄우는 게 중요합니다. 올라갈 때 손바닥을 짚는 것, 본인에게 가장 편한 보폭을 찾는 것, 양발을 모으는 것만 유념하면 더 쉽게 벽을 넘을 수 있어요”라고 설명해줬다. 그대로 해보니 아까보다 쉽게 올랐다. 뿌듯한 마음에 고개를 돌리니 다른 수강생들은 방금 내가 넘은 벽보다 2배는 높은 담을 손쉽게 오르고 있었다. “초급자는 낮은 벽에서, 중급자는 높은 벽에서, 본인 기준에 맞춰 자유로운 방식으로 하면 돼요. 파쿠르는 경쟁이 아니에요. 규칙도, 순위도 없어요.”

17일 오후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 오픈클래스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파쿠르를 연습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높은 콘크리트의 벽, 함께 오르면 이렇게 쉬운걸

높은 벽을 넘어 도착한 다음 코스는 틱택(tic-tac)이었다. 반원 형태로 경사진 구조물을 타고 올라 걸은 뒤 두 발로 착지하는 코스로, 벽을 걷다 반대쪽으로 착지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역시 초보자라 스텝을 여러 번 밟지 못했다. 땅에 떨어질 때 팔을 하늘을 향해 쫙 펴니 날다람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착지할 때 발에 충격이 왔다. “앞꿈치로 착지하면서 무릎을 굽히는 게 중요해요. 체중 때문에 발목을 다칠 수도 있어요.” 대안학교 수업에서 파쿠르를 접한 뒤 코치를 꿈꾸게 됐다는 이민규(16)군이 기자를 지켜보다 착지 방법인 랜딩(landing)에 대해 조언을 해줬다.

간신히 랜딩을 익혔더니, 이번엔 눈앞에 끝이 안 보이는 돌 계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네발걷기로 오르는 코스입니다. 뒤로 올라가야 해요.” 네발걷기? 파쿠르는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것 아니었나. “이것도 파쿠르 맞아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네, 당연하죠. 몸이 지면 가까이 붙어 낮은 상태에서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훈련입니다. 온몸을 단련시키는 거죠”라며 김지호 대표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말 그대로 몸의 근육을 하나도 빠짐없이 사용해야 했다. 몇 계단 오르지 않았는데 허벅지부터 통증이 오기 시작해 양팔이 후들거렸다. 결국 중간에 주저 앉아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할 수 있어요.” 벌써 정상에 오른 그가 소리쳤다. 가다 멈추길 세 번쯤 반복했다. 끝까지 이를 악물고 올랐다. 가장 느렸던 기자가 마지막 계단을 오를 때까지 다른 수강생들은 네발걷기를 반복하며 낙제생을 기다려줬다.

이어진 코스에선 체력이 바닥났는지 높은 벽에 가로 막히자 김지호 대표가 위에서 손을 내밀었다. “파쿠르는 협동입니다. 함께 극복하는 게 당연한 거에요.” 거친 그의 손이 따뜻했다.

17일 오후 파쿠르 제너레이션즈 코리아 오픈클래스에 참가한 시민들이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활동 후 몸을 풀고 있다. 이한호 기자
◇직접 마주친 주변의 싸늘한 시선

“학교 허락 맞고 하는 건가. 저러다 사고 나면 어떡하려고.”

연속된 벽을 오르내리는 디센딩(descending)과 어센딩(ascending) 코스를 하고 있을 무렵 학교 학생들이 지나가며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이런 일이 자주 있냐고 묻자 김지호 대표는 “자주 있어요. 누가 뭐라고 하면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합니다”라고 말했다.

대학 캠퍼스는 다양한 형태의 건물과 계단으로 이뤄져 있어 파쿠르 연습 공간으로서 안성맞춤이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과 달리 여전히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칠까 불안하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김지호 대표는 “파쿠르는 위험(danger)한 운동이 아닌, 측정 가능한 리스크(risk)를 다루는 운동”이라며 강의 한 시간 전 미리 답사를 통해 안전한 코스를 계획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안전장비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는 루프탑핑(rooftopping)이나 시티익스플로링(cityexploring)과 파쿠르는 다른 개념이다.

본래 파쿠르는 ‘길’을 지칭하는 프랑스어(parcours)에서 따왔다. 해군장교 조지 에베르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움직임을 관찰해 군인들의 체력단련법으로 정착시킨 것이 그 시초다. 과감하고 아찔한 동작으로 대변되는 파쿠르의 화려함 뒤에 자유에 기반한 자기수양과 이타주의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유용해지기 위해 강해져라(Be strong to be useful)’. 김지호 대표는 이날 강의 중 끊임없이 파쿠르의 핵심 가치인 이 문구를 강조했다. 그래서였을까. 한 시간 반에 걸친 짧은 체험이었지만, 수도승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권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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